지난 10월 말 경기도 분당의 유명 백화점 속옷 매장에서 한 고객이 판매직원에게 폭언을 퍼붓고 집기를 던지는 등 난동을 부렸다는 사실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알려지면서 공분을 샀다. 잊을 만하면 등장하는 ‘고객 갑질’이다. 이 사건은 ‘감정노동자보호법’이라고 불리는 산업안전보호법 개정안이 시행된 직후에 발생했다. 감정노동자가 처한 열악한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최소한의 장치를 마련했음에도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업무수행 과정에서 자신의 감정을 절제한 채 고객을 응대하는 감정노동자는 560만~770만명으로 추산된다. 전체 임금노동자의 30~40%가 고객으로부터 폭언·괴롭힘·성희롱·폭행 등에 노출돼 육체·정신적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얘기다. ‘고객은 왕’이라는 미명하에 감정노동자들의 가슴에 피멍이 들고 있지만 이들이 처한 현실은 열악하기만 하다. 대부분 비정규직이거나 계약직으로 근무하면서 급여·복지제도에서 차별을 받고 있다. 국민권익위원회가 운영하는 ‘110 정부민원안내 콜센터’ 상담사들은 월 140만원의 박봉을 받고 하루 평균 80건의 민원을 처리한다. 명품 업계 1위 브랜드인 샤넬의 판매직원 월급은 170만원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감정노동자의 스트레스에 따른 정신적·육체적 피해가 사회문제로 떠오르자 기업들도 적극적인 보호에 나섰다. 현대카드·위메프 등은 상담사의 ‘전화 끊을 권리’를 보장하고 롯데·신세계백화점은 고객 응대 매뉴얼을 새로 마련했다. 현대카드의 경우 상황대응력이 뛰어난 고역량 상담원 비중이 단선 조치 직후인 2012년 39%에서 지난해 8월 58%로 급증해 감정노동자 보호가 고객 만족도 제고는 물론 생산성 향상으로도 이어질 수 있음을 시사했다. 이정훈 서울 감정노동종사자권리보호센터 소장은 “고객이 갑질을 해도 그냥 넘어가는 시절은 지났다”며 “감정노동자의 권리 보호를 위해 우리 사회가 함께 고민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