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경제신문이 지난 14일 ‘2018년 우수과학자포상 통합시상식’이 열린 국립과천과학관에서 진행한 ‘우수과학자가 본 국가 R&D 현실과 혁신 방안’ 좌담회에서 과학자들은 ‘이공계 대학원 위기론’과 ‘과학기술계 사기 저하’에 대한 정부의 대책을 촉구했다.
서울대 공대와 자연대에서도 2018학년도에 석박사 미달 사태가 벌어졌고 서울대와 한국과학기술원(KAIST)조차 박사후연구원(포닥)이 고사 상태다. 연 5,000여명의 이공계 박사 중 절반 가까이가 비정규직이나 미취업으로 허덕이고 있다. 과학기술계 고급두뇌 수급이 총체적 난국이다. 따라서 정부가 생활비 보조 등 젊은 연구자의 연구환경을 개선하고 정부 출연연이나 기업과 유기적인 인력 생태계를 구축하는 게 필요하다고 과학자들은 역설했다. 다음은 좌담회 일문일답 주요 내용이다. 사회는 본지 고광본 선임기자가 맡았다.
참석자: 이탁희 서울대 교수(한국과학상), 심태보 KIST 책임연구원(한국공학상), 박홍규 고려대 교수(이달의 과학기술인상), 우성훈 IBM왓슨연구소 박사(젊은 과학자상), 박복희 목포대 교수(올해의 여성과학기술인상), 임대식 과기정통부 과기혁신본부장
사회: 고광본 선임기자
△사회=오늘 임대식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과학기술혁신본부장도 참석했으니 애로를 허심탄회하게 얘기해달라.
△박홍규 교수=연구하기 편한 환경이 아니다. 연구 인프라가 안 돼 있다. 포닥과 석박사가 부족하다. 서울대 대학원이 미달됐고 고려대 대학원에서도 몇 년 전부터 미달이 발생했다. 연구원 없는 연구실도 많다. 대학원보다 더 중요한 게 포닥인데 포닥을 뽑고 싶어도 사람이 없다. 서울대·KAIST조차도 별로 없다. 정부 출연연에서 훨씬 많이 뽑는다든지 (기업 채용이 활발해) 박사들이 ‘갈 데가 많다’는 인식을 갖도록 해줘야 한다. 학생들도 ‘BK(두뇌한국)21’ 프로그램 혜택도 많은데 ‘박사학위를 받아도 할 게 없구나. 빨리 사회에 나가자’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이탁희 교수=‘창의과제’를 하면 연구비도 많이 받고 평가도 장기적으로 받아 좋기는 한데 좋은 포닥이 없다. 미국 포닥처럼 연 7,000만~1억원을 주면 좋은 인력을 유치할 수 있는데 지금은 4,000만원밖에 못 준다. 우리나라 교수들이 노벨상을 못 받는다거나 세계적 리딩그룹에 들어가기 쉽지 않은 것도 이 같은 현상과 관련이 있다.
△우성훈 박사=기초과학연구원(IBS)의 연구단을 제외하고 포닥을 제대로 대우하는 곳이 거의 없다. 미국에 비해 포닥 등 연구인력에 대한 대우가 너무 다르다. 과정을 마친 뒤 연구인력을 흡수할 수 있는 곳도 많지 않다.
△임대식 과기혁신본부장=우수연구인력이 산업계나 학계·출연연 등으로 나가 인력 수급의 선순환이 이뤄져야 하는데 대학원생은 미달이고 진로도 활성화돼 있지 않다. 불확실성이 심해져 젊은이들의 도전이 줄었다. 지방에서는 대학원생 자체가 거의 없어 외국 학생으로 채우는 실정이다. 굉장히 심각한 문제다. 정부도 인력 양성에 고민이 많다. 가능한 한 박사과정 우수인력에 대해서는 미국 등에서 도입하고 있는 스타이펜드(stipend·학생 맞춤형 장려금 포트폴리오)처럼 등록금은 무료로 하고 생계지원금을 주는 게 맞다. 우리도 내년에 KAIST 등 과학기술원부터 그렇게 가려고 한다.
인력수급 불균형도 심한데 교수나 연구원만 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버리고 기업 등 다양하게 눈을 돌려야 한다. 대학이 재정을 늘리려고 해 대학원 정원이 넘치는데 이제는 조정할 때가 왔다. 서울대 화학공학과 대학원 정원이 150명이나 된다.
△사회=국가 연구개발(R&D)비가 연 20조원에 달하는데 배분은 좀 어떤가.
△심태보 책임연구원=연구자가 주도하는 과제가 정착되고 더욱 늘어났으면 한다. 정부가 차세대 먹거리 연구에 투자를 확대해줬으면 좋겠다. 특히 신약 탐색과 개발의 긴 여정에서 사업화와 연계된 R&D 지원이 확충돼야 한다. 이 병목현상이 해결되면 창업 등이 활성화되고 양질의 일자리가 늘어난다.
△이 교수=‘창의과제’ 프로젝트 등을 수행하다가 연구과제가 끊겨 후속연구 단절 현상을 겪는 교수들이 많다. 후속연구에 대한 단절이 되지 않도록 좀 더 기회를 많이 줬으면 한다.
△박홍규 교수=‘창의과제’를 10년째 연 7억원 이상 지원받고 있는데 (시한이) 2년밖에 남지 않아 과연 더 받을 수 있나 걱정이 된다. 우리나라 대학도 연구중심대학만 표방하지 말고 연구와 교육 중 어느 쪽으로 갈지 현실에 맞춰 전략을 짜고 집중해야 한다. 연구비 배분은 대형 ‘공동과제’보다는 금액이 적더라도 ‘개인 과제’ 비중을 획기적으로 늘렸으면 한다. 다만 연구 시작 후 3년 즈음에 냉정한 성과 평가를 통해 서로 중복되는 개인 연구는 중도탈락시키면 된다.
△임 본부장=내년에는 기초연구비가 2,800억원이나 늘어난다. (일시적으로 연구과제 일감이 끊기는 연구자에 대해 일정 기간 연구비를 지원하는) 브리지펀드도 생긴다. 연구자의 생애기본연구비 도입도 추진하고 있다.
△사회=과학자의 사기 저하 문제도 많이 나온다. 정부가 많이 애쓰고 있지만 연구환경이 확 바뀌어야 하는데 어떤가.
△박홍규 교수=젊은 연구인력은 안정된 직장이 너무 적어 사기가 침체돼 있다. 학교뿐 아니라 연구소나 회사 등 다양한 사회 진출의 길이 열리도록 (신산업 관련) 규제를 완화해 창업을 활성화해야 한다. 대학은 활발한 연구를 통해 미래산업 비전을 보여줘야 한다.
△이 교수=전자 분야 전공자라면 삼성·SK 등 대기업 취직을 많이 하지만 타 분야에서는 석박사나 포닥이 갈 곳이 많지 않다. 대학마다 포닥 등 연구인력에 대한 칸막이가 여전한 것도 문제다. 포닥이 연구과제를 따서 수행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도 필요하다.
△우 박사=한국은 물리학 등 기초과학이나 연구의 자율성 면에서 미국에 비해 뒤떨어져 있다. 기초과학 분야일수록 오랫동안 지원이 이뤄져야 하지만 단기평가도 받아야 해 단기 실적을 많이 만들어야 한다.
△임 본부장=출연연의 경우 앞으로 기관평가도 3년에서 5년으로 늘리고 연구비도 사업비로 주던 것을 역할에 맞춰 연구자유를 주겠다. 과제중심연구제도(PBS)도 최대한 25개 과기 출연연의 역할과 책임(R&R)에 맞춰 줄여가는 게 맞지만 과학연구는 텐션(긴장)과 경쟁이 있어 균형을 맞춰야 한다.
△사회=연구 현장에서 지방대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박복희 교수=연구인력이 부족해 연구비 수주가 쉽지 않다. 연구인력의 취업 역시 어렵다.
△임 본부장=사실 지방대 교수의 실력은 처음에는 서울과 차이가 없다. 그러나 인프라나 학생 등의 수준차로 점차 연구역량이 떨어지게 된다. 전남대나 부산대 등의 연구역량이 서울에 뒤지지 않았는데 지금은 무너져가는 상황이다. 지방대학은 자연스레 구조조정될 것이다. 다른 부처와 함께 지방 거점대학을 키우고 연구역량을 높이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지방대가 죽으면 서울대 박사조차 갈 데가 없다. 졸업생들은 출연연을 직장으로 선호하다 보니 지원경쟁이 엄청나다. 다만 베이비붐 세대가 5~7년 뒤면 30% 정도 출연연에서 은퇴하게 된다.
-올해 와셋(WASET) 등 해외 해적단체 대거 참가라는 연구윤리 문제도 핫이슈였다.
△이 교수: 서울대에서도 와셋에 많이 갔고 논문에 자녀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과학자들도 사회에서 통용되는 도덕적 윤리의식을 가져야 한다. ‘내가 과학자이고 연구를 잘 하니까 빼돌릴 수 있다’는 생각은 안된다. 미국·일본 등은 연구자에 자율성을 주되 연구윤리가 엄격하다. 한 번 걸리면 작살난다. 물론 학생 워크숍 비용을 집행할 수 있게 하는 등 탄력적인 점도 있다. 그런데 우리는 연구윤리 문제가 생겨도 해직이 엄청 어렵게 돼 있다.
△우 박사: 심지어 미국은 회의비도 없을 정도로 연구비 집행 등 연구윤리가 타이트하다. 하지만 연구자의 자율성이 훨씬 많다. 우리나라는 연구장비를 사고 싶으면 1년 전부터 보고하는 시스템이다. 연구가 금방금방 바뀌는데 어떻게 하나. 고가 장비를 사기도 힘들다.
△임 본부장: 국가 R&D 연구의 자율성과 책임성을 모두 높이는 방향으로 적극 노력하고 있다. 조금만 기다려달라.
/정리=고광본 선임기자 kbgo@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