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미공개·미인가 예산자료 100만건 이상을 무단으로 열람·유출한 의혹을 받고 있는 자유한국당 심재철 의원이 20일 검찰 조사를 받았다. 정보 유출 파문이 일어난 지 3개월 만이다.
서울중앙지검 형사4부(이진수 부장검사)는 이날 오후 2시 심 의원을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해 조사하고 있다. 검찰은 심 의원에게 보좌관들에게 미인가 자료 다운로드를 지시했는지, 자료 다운로드와 외부 공개에 위법 소지가 있다는 점을 알았는지 등을 물을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심 의원은 검찰 조사에 대해 “정부 여당이 의정활동에 국가 기밀 탈취와 누설이라는 누명을 씌워 국회의원의 입에 재갈을 물리려 하고 있다”고 반발했다. 같은 당 최교일·강효상·추경호·박대출 의원과 함께 서울중앙지검 청사에 모습을 드러낸 심 의원은 취재진들 앞에서 “제 보좌진들은 정부가 발급해 준 아이디로 국가예산회계시스템에 정당하게 접속해 국가 기관의 잘못된 행위를 파악해 국민께 알렸다”고 주장했다. 이어 “만약 제가 정부의 잘못을 보고도 눈 감는다면 그것이야말로 국회의원으로서 맡은 바 책임을 저버리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부가 보좌진과 자신의 통신 기록을 조회한 것에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심 의원은 “검사 배정이 되자마자 의원실을 압수수색한 데 이어 의원실 전 직원과 의원 가족에 대한 통신 정보조회를 하고, 의원 업무추진비를 사찰한 정황 등은 가히 사찰공화국이라 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기획재정부는 지난 9월 17일 심 의원 보좌진 3명을 정보통신망법 및 전자정부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심 의원 보좌진이 정부 재정정보분석시스템(OLAP)에 190여 차례 비정상적 방법으로 접속해 대통령비서실, 국무총리실, 대법원 등 30여개 정부 기관의 미인가 행정정보 100만건 이상을 유출했다는 것이 이유였다. OLAP는 정부·국회 등에서 재정 통계를 제공하는 시스템이다. ID를 발급받으면 제한된 범위에서 자료를 열람하고 내려받을 수 있다. 그런데 기재부는 심 의원 보좌진이 정상적이지 않은 경로를 통해 허가되지 않은 자료를 내려받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심 의원은 “백스페이스키를 누르다 우연히 미인가 영역에 접속하게 된 것”이라고 반박했다. 심 의원은 자료가 노출된 건 시스템 오류 때문이며 해킹 같은 불법적 방법은 쓰지 않았다고 맞섰다. 그는 국회에서 접속 과정을 시연했고, 보좌진과 자신을 고발한 기재부를 무고 혐의로 맞고소했다. 심 의원은 내려받은 자료들을 토대로 청와대가 심야·주말 업무추진비로 총 2억4,000여만원을 부적절하게 썼고, 주막·이자카야와 같은 술집에서도 예산을 사용하는 등 불법·편법 의혹을 제기했다.
기재부는 심 의원의 말대로 우연히 미인가 자료에 접근했다 하더라도 그 불법성을 인지한 후에 집중적으로 자료를 내려받은 게 적법한지는 수사를 통해 밝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미인가 정보에 접근하는 과정이 복잡해 해킹과 다름없다는 의구심을 제기했다. 기재부가 현직 의원을 검찰에 고발한 건 처음 있는 일이다.
그간 검찰은 심 의원실에서 쓰던 컴퓨터 등을 압수수색해 심 의원 보좌진이 미인가 예산자료를 내려받는 구체적 경로와 횟수 등을 밝히는 데 집중해왔다. 심 의원은 국회 회기 중이어서 조사를 받지 않아 왔다. 심 의원 조사가 마무리되면 검찰의 기소 여부 판단에 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인다. /박원희 인턴기자 whatamove@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