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지난 2016년 기준 재무취약기업이 2017년에 정상화된 사례를 분석해보니 취약사유가 단일한 경우(88.4%)와 재무취약 경험 기간 3년 이하(67.9%)가 대부분이었다. 수익성 하락이나 유동성 악화, 자본잠식이 중첩됐거나 부실이 4년 이상 장기화하면 본궤도로 올라가기가 어렵다는 얘기다. 특히 내년 이후 경기하강이 본격화하면서 제조업 수익성은 더 나빠질 것으로 보이는 만큼 사업 재편과 부채 축소 등 구조조정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한은이 20일 국회에 제출한 ‘하반기 금융안정보고서’에 따르면 2017년 기준 재무취약기업은 4,469개로 전체 외부감사 결과 공시기업(2만2,798개) 중 19.6%를 차지했다. 재무취약기업은 3년 연속 이자보상배율(영업이익/이자) 1 미만이거나 영업활동현금흐름 3년 연속 순유출, 자본잠식에 속하는 경우다. 분류별로 보면 영업활동으로 이자도 못 번 기업이 3,112개(13.7%)였고 영업활동현금흐름 순유출 기업은 1,492개(6.6%), 완전 자본잠식 상태인 기업은 1,636개(7.2%)였다. 이 중 세 가지 유형에 모두 속하는 기업은 287개(1.3%)다. 재무취약기업 수와 비중은 2014년 4,973개(22%)를 기록한 후 3년 연속 줄고 있다. 그러나 대기업이 같은 기간 18.7%에서 13.8%로 뚝 떨어진 것과 달리 중소기업은 22.7%에서 20.8%로 여전히 20%를 웃돈다.
업종별로 보면 자영업자들이 많이 속한 음식숙박업은 전체 기업 중 41.4%가 재무취약기업에 속할 정도로 광범위하게 부실이 퍼져 있었다. 중국 관광객 감소와 내수시장 침체 등이 겹쳤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부동산이 34.5%로 뒤를 이었고 수주 가뭄과 운임 하락으로 극심한 경영난에 처한 조선(28.1%)과 해운(23.8%)도 한계기업이 다수 포진했다.
한은이 취약기업의 폐업 경로를 분석한 결과 자본잠식에 빠지거나 재무지표가 점점 악화하다 폐업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은의 한 관계자는 “재무취약기업은 심각한 경영상 어려움에 처하지 않아도 사업 재편이나 부채 축소 등 자구노력이 필요하다”며 “영업부진이 만성화하고 대출로 연명하는 기업은 신속히 정리절차 같은 구조조정을 추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계기업의 부실이 곪아 터지기 전에 처리해야 금융안정을 기할 수 있다는 뜻이다.
특히 국내 제조업이 2015년부터 올해까지 4년간 누려온 수익성 개선세가 내년에 끝날 것으로 예상되는 것이 구조조정을 더욱 서둘러야 할 이유로 꼽힌다. KEB하나은행 산하 하나금융경영연구소가 이날 발표한 ‘2019년 산업전망’ 보고서를 보면 반도체와 석유화학 등 국내 제조업 전체 이익의 87.4%를 차지하는 10대 제조업의 향후 3년간 이익 규모를 추정한 결과 이들의 내년도 영업이익이 올해보다 2.7% 감소할 것으로 예상됐다. 또 디스플레이나 휴대폰 등 주요 산업의 시장 점유율이 중국에 추월당했으며 반도체의 경우 5년 뒤 중국과의 격차가 크게 좁혀질 것으로 전망됐다. 이주완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위원은 “국내 제조업 가동률은 2011년을 고점으로 계속 하락하고 있다”며 “앞으로 이익 감소는 불가피하다”고 설명했다.
가계 부문에서는 취약차주의 부실 위험이 커지고 있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은 2012년 말 34.2%에서 올해 2·4분기 말 38.8%로 상승했다. 3개 이상 금융기관에서 대출을 받은 다중채무자이면서 저소득(하위 30%) 또는 저신용(7~10등급)인 ‘취약차주’의 DSR은 67.6%로 전체 차주 평균(38.8%)의 두 배에 달했다. 100만원을 벌면 70만원을 갚는다는 뜻이다. 특히 이들은 고금리인 신용대출과 비은행 대출을 주로 활용했다.
올해 3·4분기 말 가계부채는 1,514조원으로, 처분가능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전년 동기 대비 4.1%포인트 오른 162.1%로 집계됐다. 소득보다 부채가 빠르게 늘고 있다는 뜻이다.
/임진혁·김기혁기자 liberal@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