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약정 유급휴일 수당과 시간을 모두 최저임금 계산에서 빼기로 했다. 유급휴일 시간이 최저임금 계산에 포함되면서 현대모비스·대우조선해양 등 내로라하는 대기업마저 최저임금 위반에 해당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현실로 닥쳤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수당과 시간을 모두 계산에서 제외하는 바람에 기업들 입장에서는 ‘말짱 도루묵’이라는 불만이 나온다. 특히 약정뿐 아니라 대법원 판례에 맞게 법정 주휴시간을 제외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여전히 높다.
주40시간을 일한 근로자는 매주 1일 유급휴일(법정 주휴시간)을 보장받는다. 대개 법정 주휴일은 일요일이다. 상대적으로 자금 여력이 좋은 대기업들은 토요일도 노사 약정에 따라 유급휴일로 지정한다. 모두 일하지는 않지만 수당이 나오는 휴일이다.
지난 8월 고용노동부가 입법예고한 최저임금법 시행령 개정안의 원안에는 최저임금 산정 기준 근로시간에 월 소정근로시간(근로자가 실제 일하기로 정한 시간)과 법정·약정 주휴시간을 포함한 ‘유급으로 처리되는 시간’을 더하도록 명시됐다. 기본급과 주휴수당 등 정기급여를 더한 액수(분자)를 기준 근로시간(분모)으로 나눈 게 환산 시급이다. 하지만 24일 발표한 수정안을 보면 법정 주휴수당과 시간은 포함하되 약정 휴일수당·시간은 모두 빼기로 했다. 개정령 원안은 기본급과 주휴수당 등 월 급여를 최대 243시간(법정 주휴수당과 약정 유급휴일 수당을 모두 주는 경우)으로 나누지만 수정안은 분모가 최대 209시간으로 줄어든다. 다만 월 급여(분자)에서도 약정 유급휴일 수당이 빠진다. 대법원 판례는 174시간으로 나누도록 했다.
얼핏 보면 기업의 최저임금 부담을 줄인 듯하지만 실상은 달라진 게 없다고 경영계는 주장한다. 예를 들어 소정 근로시간이 주40시간이고 법정 주휴수당과 약정 휴일수당을 모두 주는 A사업장에서 근로자에게 월급 중 기본급과 주휴수당 등 월 정기급여를 합한 액수(최저임금 산입범위)가 170만원이라면 174시간으로 나눠도 시급이 8,770원이다. 내년 최저시급(8,350원) 기준을 충족한다. 그러나 개정안 원안에 따르면 A사업장의 월 최저임금 산입범위 액수를 243시간으로 나눠 시급은 6,996원이 된다. 여기에다 고용부에 따르면 월 약정휴일 시간은 최대 34.8시간(8시간×4.345)이고 월 약정휴일 수당은 24만3,000원(170만원×34.8÷243)이다. 따라서 고용부 수정안대로 주휴수당과 주휴시간을 포함하되 약정휴일 시간과 약정휴일 수당을 동시에 빼면 분자는 145만7,000원(170-24.3)이고 분모는 약 209시간(243-34.8)이며 가상 시급은 6,971원이다.
이처럼 이번 수정안이 사실상 원안과 달라진 게 없다는 비판 속에 정부 일각에서도 유급 휴일수당을 분자에 다시 넣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재갑 고용부 장관이 24일 “약정휴일수당 지급 사업장은 근로시간과 관계없이 수당을 최저임금에 산입하는 방안에 대해 향후 노사의견을 수렴하겠다”고 말한 이유다. 당초 고용부는 5개월 가까이 원안을 고집했지만 산업통상자원부 등 타 부처가 요청하면서 국무회의 하루 전 긴급히 수정안을 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기업들은 ‘일하지 않는 시간’을 근로시간에 포함하는 최저임금 산정 방식 자체를 바꾸라는 입장이다. 약정 유급휴일수당과 법정 주휴수당을 분자에 넣되 약정 시간, 법정 주휴시간은 모두 분모에서 빼라는 요구다. 대법원 판례도 같다. 대형 로펌의 한 노동 담당 변호사는 “대법원 판례로 확정된 사안을 국회 입법이 아닌 시행령으로 바꾸는 것 역시 문제”라며 “정부가 시행령 수정안을 통과해도 향후 법원이 명령·규칙 통제권을 행사해 제동을 걸 수 있다”고 말했다.
고용부가 제시한 최장 6개월의 최저임금 자율시정 기간도 기업들의 불만이 크다. 정부는 내년 초 시행되는 월별 정기 상여금과 복리후생비의 최저임금 산입범위 포함 정책에 따라 상여금 지급 주기를 매월로 바꾸는 기업은 최저임금 기준에 미달해도 자율시정 기간을 준다는 방침이다. 취업규칙으로 지급 시기를 정하는 기업은 3개월이고 노사 단체협약으로 정하는 기업은 6개월이다. 하지만 단협은 노조 동의 없이는 개정이 불가능하고 대기업은 노조 조직률이 절반을 넘어 상여금 지급 시기를 바꾸는 게 사실상 어렵다고 기업들은 주장한다. 자신들에게 불리한 단협 개정을 노조가 허용할 리 없기 때문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노조 합의 없이는 어떤 임금체계 변경도 불가능한 기업 현실에서 최장 6개월의 자율시정 기간 부여는 정부의 책임 회피성 미봉책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실제로 대우조선해양 등은 상여금 지급시기 변경을 추진하고 있지만 노조 반발로 합의를 이루지 못하는 형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