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냄비 속 개구리가 지금까지는 땀을 뻘뻘 흘리는 수준이었다면 이제는 화상을 입기 시작할 것입니다. 정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어요.”
‘규제개혁 전도사’를 자처하는 박용만(사진)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26일 서울 남대문 상의회관에서 출입기자단 송년 인터뷰를 통해 우리 경제를 ‘냄비 속 개구리’에 비유하며 “정부가 규제 혁파에 앞장서지 못하고 있다”고 강하게 질타했다.
그는 우리 사회가 과잉규제에 신음하는 이유로 규범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점을 꼽았다. 박 회장은 “법의 문제가 있고 규범의 문제가 있는데 우리 사회는 규범이라는 룰이 작동을 안 하다 보니 규범으로 해야 할 일을 법으로 해결하려 든다”고 꼬집었다. 그는 “20대 국회 들어서도 기업 관련 법안이 1,500여개가 발의됐는데 800개 이상이 규제 법안”이라며 “지금도 규제 때문에 죽겠다는데 800개씩 더할 규제가 무엇인가”라고 반문했다.
최저임금 시행령 개정안에 대해서도 “(우리 입장은) ‘받는 것 나누기 실제 근무시간’이라는 대법원 판례대로 하자는 것”이라며 주휴 시간을 근로시간에 포함한 정부안에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박 회장은 우리 사회 리더들에게도 쓴소리를 날렸다. 현안에 대해 책임감을 갖고 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박 회장은 “카풀 등 갈등 사안에 대해 아무도 십자가를 지고 싶지 않아 한다”며 “공무원만 해도 규제를 풀면 혼란이 일어날 것 같다는 불안감, 정부가 바뀔 때마다 이뤄지는 감사에 대한 부담감으로 규제 완화를 회피하는 경향이 있다”고 꼬집었다. 집중투표제 의무화 등 지배구조 관련 규제가 많이 담긴 상법 개정안과 관련해서도 “대기업에 대한 견제도 기관투자가들의 의결권 행사 등 기존 제도로 이행하면 되는데 새로 법을 만드는 게 말이 되느냐”며 과잉입법으로 규정했다.
내년 경제에 대한 우려도 나타냈다. 박 회장은 “2019년은 하방 압박을 계속 받을 것으로 본다”며 “첫째는 (우리 경제에서) 규제 혁파 등 근본적인 개혁조치가 제대로 이뤄진 게 없고 대외환경도 미중 무역갈등 지속 등으로 어렵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그러면서 “우리 경제의 구조적 하향 추세를 극복하려면 성장이냐 분배냐의 이분법적 접근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지적했다. “해외에 대한 벤치마킹조차도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자기에게 유리한 것’만 이야기하고 있다”며 우리 사회의 당파성에 강한 유감을 표시했다.
박 회장은 특히 경제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종합처방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링거처방이나 특정부위 수술만을 해서는 안 되고 식단조절·운동처럼 종합처방이 있어야 장기적이고 근본적인 개선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박 회장은 “과거에 수립한 대안들이 과연 왜 실행이 안 됐는가를 면밀히 살펴봐야 할 때”라며 “사회안전망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5개국 중 34위이고 실직에 대한 공포는 여전한데 선진국 수준의 고용 유연성을 갖춰달라고 하면 과연 그게 되겠느냐”고 되물었다.
그는 이어 “과거의 규제 시스템과 제도가 성장과 혁신을 막고 있는데 경제활력을 높이고 일자리를 창출하라고 하면 불가능하다”며 “전체적인 관점에서 접근해야 해결이 된다”고 거듭 강조했다.
산업구조에 대한 과감한 구조조정도 조언했다. 박 회장은 “우리나라는 정치적인 부담 때문에 기업이 낙오되는 것을 내버려둘 수 없는 구조”라며 “낙오되는 것을 막으려고 금융지원을 해주다 보니 생태계는 변하지 않고 그냥 연명하게 되고 그 부담이 커지면서 산업계 전반에 연구개발(R&D) 지원은 굉장히 작아진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상의에 따르면 정부 지원금 중 R&D 관련 예산은 독일의 경우 92%인 반면 우리나라는 26%에 그친다. 박 회장은 사회안전망의 중요성도 짚었다. 그는 “한계기업이 쓰러지게 내버려두려면 그 안에서 일했던 근로자들을 보호할 수 있는 사회안전망이 갖춰져야 하고 사회안전망의 보호를 받는 동안 전직할 수 있는 일거리가 있어야 한다”며 “그러려면 한계기업 도산을 메꿀 만한 성장세가 있어야 하는데 이런 부분이 규제로 막혀 있다 보니 악순환 구조가 계속된다”고 진단했다.
최근 난항을 겪고 있는 ‘광주형 일자리’와 관련해서는 “상당히 좋은 모델이라 잘됐으면 하는 바람”이라며 “도대체 무슨 명분으로 반대하고 대립하는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그는 “정 안 되면 다른 지역, 다른 산업에서라도 시도했으면 좋겠다”면서 “(광주형 일자리의 경우) 현대차와 민주노총 간의 문제가 있다면 다른 곳에서 해볼 수 있지 않겠느냐”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기업 내부와 산업계에 대해서도 자성의 목소리를 잊지 않았다. 박 회장은 “선단 구조로 돼 있다 보니 맨 앞에 있는 대기업이 지배구조 개선을 포함해 여러 압박을 받는 것”이라며 “정부도 선단 구조를 탈피할 수 있도록 선단이 아닌 업체가 잘할 수 있는 토양을 갖춰줘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