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열리면서 오는 2020년 대선을 향한 미국 워싱턴 정가의 시계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8년 만에 하원을 장악하는 민주당이 3일 개원과 동시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연방정부 셧다운(일시적 업무정지) 사태를 놓고 일전을 예고한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의 ‘앙숙’인 엘리자베스 워런 민주당 상원의원은 당내 대선후보군 가운데 처음으로 출마를 공식 선언하며 대선 레이스의 시작을 알렸다. 신년 벽두부터 민주당의 전방위 공세를 받게 된 트럼프 대통령은 전통적 지지기반을 확고히 하는 ‘집토끼’ 잡기에 더욱 집중하는 모양새다.
워런 의원은 지난달(31일) 지지자들에게 보낸 4분30초짜리 영상에서 “미국의 중산층이 공격받고 있다”며 2020년 대선 예비선거대책위원회를 출범시킨다고 밝혀 새해부터 민주당 대선 레이스에 불을 붙였다. 지난 대선에서 ‘샌더스 열풍’을 일으킨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과 함께 당내 진보세력을 대표하는 양대산맥으로 통하는 그는 이날 발표에서 “억만장자들과 대기업들은 더 많은 파이를 원하기로 결정했고 정치인들을 동원해 (그들의 파이를) 더 크게 자르게 했다”며 ‘부자·대기업’ 친화정책을 펴는 트럼프 대통령을 직접 겨냥해 대립각을 세웠다.
하버드대 교수 출신인 그는 민주당에서도 진보 성향이 강한 인사로 지난 2012년 매사추세츠 최초의 여성 상원의원에 당선된 바 있다. 지난 대선에서는 공화당 트럼프 후보의 인종·여성차별적 발언을 집중 비판하며 ‘트럼프 저격수’라는 명성을 얻기도 했다.
미 언론들은 워런의 출마선언을 기점으로 조 바이든 전 부통령과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 베토 오루크 하원의원,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시장 등 범 민주당계 잠룡들이 조만간 대선 출마를 선언해 민주당의 대선 레이스가 달아오를 것으로 보고 있다.
3일 개원하는 의회도 트럼프와의 본격적인 대립을 예고하며 2020대선을 노리는 트럼프의 발목 잡기에 나선다. 뉴욕타임스(NYT) 등 미 언론들은 3일 하원 개원일에 맞춰 다수당인 민주당이 멕시코 장벽건설 예산을 완전히 들어낸 ‘패키지 지출법안(예산안)’을 하원 본회의에 상정해 처리하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민주당의 패키지 법안은 이른바 ‘장벽 예산’과 관련이 적은 타 부서들의 예산을 이번 회계연도가 끝나는 올해 9월30일까지, 장벽 예산과 관련이 있는 국토안보부 예산은 셧다운을 피하기 위해 다음달 8일까지 지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중 국경안보 분야 지원 예산은 장벽건설 예산을 제외한 현행 13억달러 규모로 제시했다.
단기지출 법안과 정상적 지출 법안을 조합한 이 법안은 갈수록 피해가 커지는 연방정부 마비사태를 해결하는 동시에 민주당과 트럼프 정부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장벽 예산에서는 민주당의 목소리를 그대로 담은 것으로 평가된다. 해를 넘기며 장기화 양상을 보이는 셧다운의 책임론을 장벽 예산이라는 몽니를 부리는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에 돌리겠다는 포석으로 풀이된다. 법안은 민주당이 다수당인 하원을 통과할 것으로 전망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양보하지 않는 이상 공화당이 장악한 상원의 벽을 뚫기는 힘들 것으로 보여 셧다운의 책임이 트럼프 행정부와 공화당으로 향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장기화하는 셧다운 대치에 대한 여론의 향방이 어디를 가리킬지 불확실한 가운데 자칫 트럼프 대통령을 겨냥한 전방위적 의회 조사 등 민주당이 준비 중인 다른 이슈들이 묻힐 가능성도 있다. AP통신은 “하원 권력교체라는 새로운 시대의 첫 번째 큰 전투가 될 것”이라며 이번 대치가 트럼프 대통령과 민주당 모두에 시험대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은 폭풍 트윗을 통해 장벽 예산 고수 입장을 더욱 확고히 하며 민주당 압박은 물론 자신의 전통적 지지기반 다지기에도 힘을 쏟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자신의 트위터에서 “(멕시코 국경 지역에 설치 중인) 모든 콘크리트벽은 결코 포기되지 않는다”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