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의 경제 석학과 정책 당국자들이 올해 세계 경제의 최대 관심사로 ‘차이나 리스크’를 꼽았다. 4일(이하 현지시간) 미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 개막한 전미경제학회(AEA) 연례총회 참석자들은 중국의 경기 부진 가속화와 미중 무역전쟁뿐 아니라 중국의 지속적인 성장도 세계 경제에 위험 요인이 될 수 있다며 중국이 글로벌 리스크의 ‘블랙박스’처럼 불확실성을 갖는다고 경계감을 표명했다. 지난해 미국이 무역전쟁을 벌이면서 중국의 기술 침해나 일대일로 프로젝트와 연계한 부당한 굴기를 집중부각시킨 것이 경제학계에도 그대로 반영됐다는 분석이다.
4~5일 AEA 연례총회에서는 중국 관련 세션이 집중적으로 열렸다. 총 500여개의 세션 가운데 50여곳에서 발표된 중국 관련 논문 및 보고서만 무려 110건에 달했으며 논의된 내용도 미중 무역전쟁에 그치지 않고 중국 노동시장과 생산성, 관료·정치 시스템, 위안화 환율 및 과다 부채, 국영기업 및 부동산 문제까지 다양한 부문의 이슈들을 망라했다.
특히 경제학자와 전문가들은 최근 급격한 경기 둔화 가능성이 제기되는 중국 경제가 또 다른 위기의 촉매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를 잇따라 쏟아냈다. 골드만삭스 사장을 지낸 헨리 폴슨 전 미 재무장관은 미래의 경제위기와 관련해 “지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우려되는 부분들은 상당수 중국에서 촉발됐다”면서 “중국의 성장률이 높은 수준을 유지하더라도 리스크는 남아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중국의 문제는 블랙박스처럼 앞으로 어떻게 커질지 모르는 불확실성”이라며 “간접적으로 연계된 국가들에도 파장이 미칠 것”이라고 강조했다. 중국과 지리적으로 인접한 국가이자 최대의 무역상대국인 한국의 입장에서는 중국발 위험에 따른 불확실성이 상존할 수밖에 없는 셈이다.
회의장에서 서울경제신문과 만난 2017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리처드 세일러 시카고대 교수는 ‘미중 무역갈등을 조정할 묘안이 없겠느냐’는 질문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라는 비이성적 변수를 제거해야 하는데 그것이 안 되니 뾰족한 답은 없다”고 말했다. 세일러 교수는 “경제 문제는 보통 이성적인 상황을 전제로 해결책을 찾아야 하는데 지금은 그런 상황이 아니다”라며 “행동경제학에 입각해 해법을 찾는다면 (변덕이 심한) 트럼프 대통령을 빼고 얘기해야 한다”고 밝혀 미중 간 무역전쟁이나 외교·안보 분야의 갈등이 쉽사리 풀리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세계 경제에서 중국의 비중이 커지면서 장기적으로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로라 앨파로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중국으로부터의 수입이 계속 증가하는 브라질을 사례로 들며 “중국산 수입품이 단기적으로는 브라질 기업들의 생산성 제고에 도움이 됐지만 장기적 측면에서 브라질의 경제 혁신 능력은 떨어지고 고용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지적했다.
미국 정책 당국자들 사이에서는 중국의 정부주도 성장 전략이 한계에 이른 것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됐다. 케빈 해싯 백악관 경제자문위원장은 ‘세금과 경제’ 세션에서 “중국의 성장률이 감속하는 것은 ‘정부 당국이 주도해온 정책들이 전만큼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갖게 한다”고 진단했다.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도 “증시 등 금융시장이 글로벌 성장 둔화 리스크에 반응하면서 변동성이 커졌다”며 특히 중국의 주요 경제지표들이 예상치에 크게 못 미치는 일들이 생기면서 불안감을 높이고 있다고 우려했다.
카리나 마노바 런던대 교수는 미중 무역전쟁 리스크에 노출된 기업들을 향해 “보호무역 흐름이 강해지는 시기인 만큼 기업들이 수출이나 수입에서 제품 가격이나 수량, 시장 정보 등을 체계적이고 민첩하게 관리하는 능력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지고 있다”고 조언하기도 했다.
이번 학회를 참관한 김성현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는 “중국 경제가 불안하고 여기에 미중 무역전쟁까지 장기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전미경제학회 전반에 걸쳐 특징적일 만큼 팽배했다”면서 “한국 경제가 중국과 관련한 불확실성을 숙명적으로 떠안으며 부담이 계속 커지는 만큼 제조업뿐 아니라 통상·서비스 등 경제 정책과 전략 모두 심도 있게 점검하고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애틀랜타=손철특파원 runiro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