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침체 우려가 커지고 있는 상황이지만 지난해 수출이 전년 대비 5.5% 증가한 6,055억달러로 사상 최대치를 달성했다. 수입도 11.8% 증가해 5,350억달러에 이르렀으나 무역수지는 10년 넘게 흑자 기조가 유지되고 있다. 소비·생산과 설비투자가 동반 부진을 보이는 가운데 수출이 유일하게 우리 경제성장의 버팀목 역할을 해주고 있다. 실제로 한국은행의 분석에 따르면 지난해 3·4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 증가에 대한 소비·투자 등 내수의 성장 기여도는 -1.3%포인트인 반면 수출의 기여도는 1.7% 포인트였다. 올해도 이 정도의 수출 성장 기여도가 지속되기를 기대해보지만 그렇게 될 가능성이 커 보이지는 않는다.
가장 큰 이유는 미국과 중국 간 무역전쟁 지속에 따른 세계 경기 하락과 반도체 경기 둔화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무역전쟁과 금융 리스크로 미국과 중국의 올해 경제성장률이 각각 0.4%포인트 하락한 2.5%, 6.2%가 될 것으로 전망했으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무역전쟁으로 오는 2021년까지 세계 경제성장률이 0.5%포인트 하락할 것으로 예상했다. 실제로 연초부터 ‘중국발 애플 쇼크’로 전 세계 증시가 급락했다.
한편 지난해 우리나라 반도체 수출이 1,267억달러를 기록해 전체 수출의 21%를 차지했다. 단일품목으로는 처음으로 수출 1,000억달러를 넘어섰다. 그러나 세계반도체시장통계기구(WSTS)는 올해 세계 메모리 반도체 시장이 역성장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공급과잉으로 가격이 하락하면서 반도체 경기가 고점을 지난 것으로 평가되기 때문에 올해는 수출 증가세 둔화가 불가피해 보인다.
미중 간 무역전쟁은 3,000억달러가 넘는 막대한 규모의 대중 무역수지 적자가 직접적인 이유가 됐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미국의 지식재산권이 중국에 의해 광범위하게 침해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계무역기구(WTO)가 이를 제대로 시정하지 못하고 있다는 피해의식이 자리 잡고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중국제조 2025’를 통해 기술 패권에 대한 의지를 공개적으로 천명한 후 미국은 화웨이를 비롯한 중국 대표기업들의 손발을 묶고 WTO 분쟁 패널 상소기구의 후임 지명을 거부해 이 체제를 무력화시키려 하고 있다.
미중 무역전쟁이 3월1일까지 3개월간 휴전에 들어갔지만 쉽게 합의에 도달할 것 같지는 않다. 중국이 자동차 관세율 인하, 농산물 수입 확대, 지재권 침해 처벌 강화 등의 대안을 제시했지만 미국은 그 정도에 만족하지 않고 보다 근본적인 대책을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단기적으로는 중국의 피해가 훨씬 크게 나타나겠지만 양국 간 무역전쟁이 장기화할수록 미국도 중국 못지않은 피해를 보게 될 것이다. 미국의 정치 일정 등을 감안하면 지금과 같은 전면전은 길게 가기 어렵다. 미국은 최대한의 압박을 통해 단기간에 가시적인 성과를 얻어내려 할 것이다.
미국은 이미 지난해 9월 말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나프타) 재협상 결과 탄생한 미국·멕시코·캐나다협정(USMCA)을 통해서도 중국에 대한 견제와 압박을 가하고 있다. 미국은 USMCA에 노골적으로 중국을 겨냥해 ‘비시장 경제’와의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제한하는 조항을 신설하고 국제통상협상 최초로 부당한 환율조작 금지를 명문화했다. 또한 금융 서비스의 데이터 국외 이동과 현지 저장, 디지털무역, 지재권 보호, 노동과 환경, 일몰조항 강화 등 다른 어떤 FTA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내용들이 신설됐으며 이를 통해 중국을 봉쇄하고 글로벌 표준을 선점하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우리의 교역 대상국 1·2위인 중국과 미국이 무역전쟁을 벌이는 게 우리에게 도움이 될 것은 별로 없다. 한시적으로 일부 반사이익을 볼 수 있을지는 몰라도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많기 때문에 향후 진행상황을 면밀히 모니터링하고 신보호주의의 파고를 잘 넘을 수 있도록 전략적 통상외교를 펼쳐야 한다. 당장에는 미국의 자동차 분야에 대한 ‘무역확장법 232조’ 조사에서 예외 적용을 받도록 노력해야 하고 중장기적으로는 USMCA가 미국 양자 FTA의 새로운 틀이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이에 대한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