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차를 타고 백악관을 지나쳤다. 오랜만에 본 백악관은 이전보다 더 조그맣고, 어딘지 싸구려 같은 느낌을 줬으며, 거의 귀신이 든 흉가처럼 보였다.
백악관을 보며 떠올린 것은 요란스레 날개 치며 백악관을 들락거리는 박쥐들과 건물 구석구석에 늘어진 거미줄, 그리고 위층의 대통령 숙소에 홀로 앉아 TV를 보면서 혼잣말을 하거나 펠로시와 연준, 뮬러, 마크롱, 메이, 마티스, 세션스와 스토미, 그리고… 또 누가 있을까. 아, 그렇지…오바마까지 싸잡아 덤터기를 씌우는 트럼프의 모습을 떠올렸다.
차의 속도를 줄이자 마치 백악관 위층에서 터져 나온 곡성이 들리는 듯했다.
도널드 트럼프는 미쳐가고 있다.
아니면 내가 미친 것인지도 모른다. 뭐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니다. 트럼프는 멀쩡한 사람들을 미치광이로 만드니까.
또 다른 한 해를 맞이했음에도 트럼프가 여전히 미국 대통령직을 지키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다. 그 충격은 좀처럼 가시지 않는다.
트럼프는 단 한 번도 정상인 적이 없었다.
가끔 TV에서 그를 볼 때마다 구역질이 치민다:저 친구가? 아니 어떻게?
나는 안다. 전체 득표수가 아닌 선거인단 대의원 수와 3개 접전주의 투표 결과가 그를 대통령으로 만들었다.
맞다. 하지만 어쩌다 우리가 이처럼 멍청하고, 거짓말쟁이인데다 유치하고, 어리석으며 추하기까지 한 자를 대통령으로 뽑았단 말인가.
그는 링컨이 걸었던 백악관 복도를 거닐고, 루스벨트 부부가 이용했던 침실에서 잠을 자며 처칠이 백악관을 방문했을 때 사용했던 욕실에서 목욕을 한다.
만약 트럼프가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다면 과연 처칠은 그를 만나려 백악관을 방문했을까.
트럼프는 미국을 더럽혔다. 그는 미국을 더욱 위대하게 만든 게 아니라, 이제 모두가 분명히 알 수 있듯이, 미국을 망가뜨렸다.
미국을 ‘언덕 위의 빛나는 도시’로 묘사한 로널드 레이건을 비롯해 트럼프 전임자들이 자랑하던 미국은 이제 열방 중의 빈민가에 해당한다.
역대 대통령들이 후렴처럼 되뇌던 미국민의 선량함도 이제는 단지 기억에 불과하다.
그러나 미국민의 선량함은 관광 가이드들이 치켜드는 깃발과 같았다. 그것은 ‘나를 따르라’는 신호였다.
‘미국을 따르라’:우리는 나치로부터 유럽을, 일본 제국주의로부터 아시아를 구했기 때문이다. 그러고 나서 우리는 또다시 소비에트 공산주의를 신봉하는 스탈린주의자 일당으로부터 유럽을 구출했다. 우리는 전례 없는 공수작전으로 베를린을 구했고, 백신을 개발해 소아마비를 박멸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선량한 민족이라고 생각했다. 위대한 민족이라고 생각했다.
트럼프는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기를 원한다. 그것은 과거 대통령들이 사용했던 익숙한 후렴구다.
1960년 대선에서 리처드 닉슨과 맞선 존 F 케네디도 이와 같은 슬로건을 여러 번 사용했다. 당시 케네디는 이렇게 외쳤다. “미국은 위대한 국가다. 그러나 나는 미국이 지금보다 더욱 위대한 국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 바로 지금 미국은 또다시 전진을 시작해야 한다.”
놀라운 사실은 케네디의 전임이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행정부였다는 점이다.
이제 와 돌이켜보면 당시는 큼직한 차와 한가한 교외생활, 드라마 ‘매드 맨(Mad Men)’에 등장하는 마티니 문화 등 중산층의 속물스러운 풍요가 대세였던 시기였다. 특히 백인 남성들 사이에 전반적으로 모든 일이 잘 돌아가고 있다는 정서가 팽배했던 때였다.
그러나 전쟁이 없었고 경제가 번영을 구가하고 있었기에 전반적으로 볼 때 더할 나위 없는 호시절이었다.
하지만 꾸준한 베트남전 개입과 엉망진창인 사생활에도 불구하고 짧았던 케네디의 임기가 여전히 빛을 발하는 것은 멋들어진 그의 이미지 때문이 아니라 그의 수사(rhetoric)가 지닌 진정성 때문이다.
그의 본보기를 따를 것과 선한 행동 및 공공 서비스 참여의 중요성을 강조한 그의 수사는 설득력을 지녔다.
그의 수사를 연방 근로자들에 대한 트럼프의 비방과 대조해보라. 케네디는 미국민에게 공공 서비스에 참여할 것을 요구했다. 케네디는 국가가 국민을 위해 무엇을 할지 묻지 말라고 했다.
이후 대통령들은 케네디를 기준으로 삼아 자신을 평가했다.
하지만 트럼프는 아니었다. 그의 수사는 허접한 쓰레기였다. 그는 음침한 영혼의 소유자다. 그의 비전은 전통적인 미국의 비전을 축소하는 것이다.
그는 국제무대에서 도덕적 지도력을 보이기는커녕 블라디미르 푸틴 같은 독재자의 등을 다독인다.
그는 숨 쉬듯 거짓말을 한다. 아이젠하워가 프란시스 게리 파워스가 몰던 U-2정찰기 격추사건에 대해 둘러댔던 것처럼, 꼭 그럴 수밖에 없는 필요에서가 아니라 그것이 가장 손쉬운 방법이기 때문에 거짓말을 한다.
그들의 자녀가 트럼프와 같기를 원하는 부모는 이 세상에 단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트럼프의 한 가지 확실한 성과라면 자신이 대통령직에서 물러나는 것으로 후임자에게 더욱 위대해질 미국을 넘겨준다는 것일 터이다.
거짓말하지 않는 정직한 대통령, 포르노스타의 침묵을 돈으로 사려 들지 않는 대통령, 자신의 세금 보고를 당당하게 공개하는 대통령, 사적인 돈벌이를 뒷전으로 밀어놓는 대통령, 자신의 정당을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힌 술집 건달들의 집합소처럼 만들지 않는 대통령, 외국 정부의 언론인 살해에 분노하는 대통령, 자유언론의 중요성을 존중하는 대통령…이런 대통령이 나타나는 것만으로도 미국은 더욱 위대해질 것이다.
하지만 차를 타고 지나치며 바라본 백악관은 옷장 속에 숨겨뒀던 숱한 거짓과 스캔들, 온갖 범죄가 꾸역꾸역 밀려 나오는 사재기꾼의 슬픈 집처럼 보인다. 그리고 그곳에서 트럼프는 트위터로 미치광이의 헛소리를 쏟아내고 있다. 내가 떠올린 백악관은 정신병원이고, 우리가 뽑은 대통령은 미치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