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로 여는 수요일] 겨울 시편

- 김경성

0915A38 시로 여는 수요일



한겨울 날아드는 철새 떼는


전깃줄부터 팽팽하게 맞춘다

봄부터 가을까지 마음 열고 있는 전깃줄을

오동나무 공명판에 걸어놓고

바람으로 연주한다

산조가야금 소리 들판을 가로질러갈 때

저수지의 물결마저 일시 정지하여

제 몸 위에 얼음판을 올려놓고

새들의 그림자까지 다 받아낸다

춤을 추는 산사나무,


붉은 열매 후드득 떨어트려서 음표를 그려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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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수지 큰 북을 두드리는 새떼가

한꺼번에 날아오른다

대숲에서는 마라카스 소리가 비바체로 흘러나온다

하늘 궁륭을 천장으로 삼고, 첩첩 산맥을 벽으로 삼고, 광활 대지를 무대로 삼은 거대한 겨울 음악당. 오직 청각에 집중할 수 있도록 잎도 꽃도 다 지운 무채색 겨울 들판에 악사들이 날아왔구나. 전깃줄 현이 울고, 오동나무 공명판이 떨고, 저수지 큰북이 쩡쩡 소리 내고, 대나무 마라카스가 빠르게 부대끼니 바위조차 귀를 기울이고 있구나. 저토록 크고 아름다운 우주 음률이 겨우내 울려 퍼지는데도 듣지 못했던 것은 내 마음의 작은 소음들 때문이었구나. <시인 반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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