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대통령선거 공약에서 “공공 부문부터 노동이사제를 도입해 민간기업으로 확산시키겠다”고 약속했다. 근로자 대표 1~2명의 경영 참여를 보장해주겠다는 뜻이다. 금융위원회의 민간 자문기구인 금융행정혁신위원회도 지난 2017년 12월 금융행정혁신보고서를 통해 관련 제도 도입을 권고했다.
그 결과 공공기관에도 노동이사제 바람이 불었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를 비롯해 한국전력공사·코스콤 등이 노동이사제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서울시만 해도 서울교통공사와 서울신용보증재단을 비롯해 16개 기관에서 22명이 활동하고 있다. 지난달 국민연금공단이 노사 합의로 노동이사제를 도입하겠다고 한 것도 이런 흐름을 탄 것이다. 2017년 11월 김성주 국민연금 이사장은 노동이사제를 두고 “노동자는 식구라고 이야기하면서 정보 공유하는 데는 왜 식구가 아니어야 하나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이사장부터 노동이사제에 긍정적 인식을 갖고 있는 셈이다.
중요한 것은 국민연금의 성격이다. 다른 공공기관과 달리 국민연금은 주요 기업의 지분을 갖고 있다. 8일 기금운용본부가 공개한 지난해 4·4분기 기준 대량주식보유상황을 보면 국민연금은 삼성전자 10.05%를 비롯해 신세계(13.62%), LG화학(9.74%), LG디스플레이(7.15%), 한화케미칼(7.09%) 등 주요 업체의 지분을 갖고 있다. 한전(7.19%)이나 중소기업은행(8.15%) 같은 공공기관 지분도 적지 않다. 공시는 지분 5% 기준으로 1%포인트 이상 변화가 있거나 신규로 5% 이상 취득한 곳만 포함돼 실제 지분을 5% 이상 갖고 있는 업체는 더 많다. 지난해 12월 기준으로 국민연금이 5% 이상 지분을 보유한 기업은 303개나 된다.
이 때문에 국민연금이 노동이사를 뽑게 되면 지분을 갖고 있는 기업에도 관련 제도 도입을 권유할 수 있는 토대를 갖추게 되는 꼴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지분 5% 이상은 이사회 구성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국민연금은 2017년 11월 있었던 KB금융지주 임시주주총회에서 KB금융노조가 추천한 하승수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의 사외이사 선임건에 찬성해 주목을 받았다. 지난해 3월 주주총회에서는 노조 측 추천인사인 권순원 숙명여대 교수 선출에는 반대했지만 국민연금이 노사 합의로 노동이사제 도입을 추진하기로 한 점에 비춰보면 앞으로는 기업체의 노동이사나 노조 추천인사의 이사회 진입을 긍정적으로 보지 않겠느냐는 분석도 나온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국민연금에서는 노동이사제를 하면서 투자기업은 하면 안 된다고 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전했다.
물론 최종적으로 국민연금에 노동이사제가 도입되기 위해서는 관련 법 개정이 필요하다. 정부는 직원이 비상임이사를 겸하는 노동이사제는 ‘공공기관 운영에 관련 법률’에 따라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HUG가 노동이사제에 앞서 근로참관제를 도입하기로 한 것이나 최대 공공기관인 한전이 상황을 보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서울시나 인천·광주 같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은 공운법 대상이 아니어서 별도 조례를 통해 노동이사제를 시행하고 있다. 기획재정부의 고위관계자는 “법 개정안이 상임위 소위에서 논의되고 있지만 아직 진척이 없다”면서도 “문재인 정부의 100대 국정과제에 포함돼 있는 만큼 어떤 식으로든 시행될 수 있게 속도를 낼 것”이라고 강조했다.
/세종=김영필기자 susopa@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