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조재범 전 코치 파문 ‘한국판 나사르’ 도화선 되나

징역 360년 받게한 美체조선수의 용기있는 증언 떠올려

노태강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이 지난 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열린 빙상 조재범 전 코치 심석희 성폭행 파문 관련 브리핑에서 후속 대책을 발표하고 있다./연합뉴스노태강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이 지난 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열린 빙상 조재범 전 코치 심석희 성폭행 파문 관련 브리핑에서 후속 대책을 발표하고 있다./연합뉴스



새해 벽두에 한국 체육계를 발칵 뒤집어 놓은 쇼트트랙 국가대표 심석희(22)의 성폭행 피해 폭로는 성폭력 가해자 래리 나사르(56)에 징역 360년을 받게 한 미국 여자 체조선수들의 용기 있는 증언을 떠올리게 한다.

심석희는 조재범 전 대표팀 코치에게 고등학교 2학년 때인 2014년부터 4년간 성폭행을 당했다고 밝혀 큰 충격을 안겼다. 심석희는 조 전 코치를 성폭행 혐의로 추가 고소했다.


조 전 코치는 심석희를 포함해 선수 4명을 폭행한 혐의로 기소돼 지난해 징역 10월의 실형을 선고 받고 법정 구속된 상황이었다. 이에 경찰은 조 전 코치의 폭행과 성폭행 연관 가능성을 수사 중이다. 조 전 코치는 심석희의 주장이 사실무근이라며 반박했다.

심석희의 고백 후 또 다른 빙상 선수 2명이 성폭행 피해 사실과 가해자를 조만간 공개할 예정이어서 사태는 일파만파로 커질 조짐이다. 조 전 코치를 비롯한 가해자들의 성폭행이 사실로 밝혀진다면, 이는 한국 엘리트 스포츠를 뿌리째 흔들 뇌관이 될 것이 자명하다. 벌써 ‘성적 지상주의와 폐쇄적인 체육계 관행이 낳은 부끄러운 민낯’이라는 비판이 쇄도하고 있다. 국가대표 선수·지도자를 관리 감독하는 대한체육회와 문화체육관광부에 책임을 엄중히 물어야 한다며 정부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폭행과 성폭력이라는 적폐를 완벽하게 도려내지 않으면 한국 체육은 빙상계와 엘리트 스포츠를 향한 국민의 엄청난 불신에 직면한다.


미국에서 벌어진 나사르 사태가 이런 점을 잘 알려준다. 미국 미시간대 체조팀과 미국 체조대표팀 주치의를 지낸 나사르는 30년 가까운 기간 300명이 넘는 여자 체조선수들을 성추행·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돼 사실상 종신형을 받고 수감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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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전·현직 체조선수 150명은 지난해 1월 나사르에게 당한 성적 학대를 잇달아 폭로했다. 2017년 연방 재판에서 징역 60년을 선고 받은 나사르는 선수들의 연쇄 증언이 나온 2018년 1월엔 미시간주 법원에서 미성년자 성폭행 유죄를 인정하고 최고 175년형을 또 받았다. 2월 판결에선 여기에 최대 125년 형을 추가로 선고 받았다.

나사르의 일탈을 방조하고 선수들을 보호하지 못하고 구조적인 허점을 드러낸 미국 체육계는 곳곳에서 난타를 당했다. 나사르에게 종신형에 가까운 징역을 선고한 후에도 미국체조협회는 물론 미국올림픽위원회 고위급 인사들이 줄줄이 옷을 벗었고, 한 번 땅에 떨어진 체육계 신뢰는 좀처럼 회복되지 않았다. 피해자들은 미국체조협회와 미국올림픽위원회를 상대로 수백건의 소송을 제기했고, 현재 관련 조사가 진행 중이라 나사르 사태는 여전히 비난받고 있다.

심석희의 폭로는 체육계 ‘미투’(나도 당했다) 운동의 도화선이 될 수 있기에 주무 부처인 문체부도 사안을 심각하게 논의하고 있다. 문체부는 성추행·성폭행 가해자를 체육계에서 영구제명하고 해외 취업도 차단하는 등의 한층 강화한 성폭력 근절 대책을 발표했다. 민간주도로 성폭행 관련 체육 단체 전수조사도 진행해 체육계의 실태를 더욱 면밀히 살펴볼 방침이다.

/정현정 인턴기자 jnghnjig@sedaily.com

정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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