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에 모든 정보와 지식이 있다고 하지만 진짜 경쟁력 있는 정보와 지식 그리고 통찰은 책에 있다.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정보와 지식으로는 한치 앞을 가늠하기 어려운 불확실성의 시대를 헤쳐나기에는 역부족이다. 대체 불가능한 나만의 경쟁력을 확보하고 시대를 꿰뚫어 보며 한편으로는 지적, 감성적으로 충만한 자극을 줄 세계적인 석학들의 책을 비롯해 양질의 신간들이 올해도 어김없이 독자들을 찾는다.
우선 세계적인 석학들의 신간이 눈길을 끈다. ‘총, 균 쇠’의 제러드 다이아몬드는 ‘대변동’을 5월께 출간한다. ‘대변동’은 ‘총, 균, 쇠’ ‘문명의 붕괴’를 잇는 문명사 3부작의 완결판이다. 이전까지의 연구로 무엇이 문명을 흥망성쇠하게 했는지를 밝혔다면 이 책에서는 성공한 국가들이 어떻게 위기를 극복해왔는지 탐구하고 국가와 세계가 나아갈 방향을 예측한다. ‘인류 3부작’인 ‘사피엔스’ ‘호모 데우스’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을 통해 ‘유발 하라리 현상’을 일으킨 하라리는 6월께 ‘유발 하라리의 르네상스 전쟁사’를 선보인다. 그의 박사학위 논문을 바탕으로 한 이 책은 르네상스 시대 군인의 삶과 글을 통해 당대의 사회, 정치, 문화를 분석해 근대의 탄생 과정을 밀도 높게 포착했다.
스웨덴의 의사이자 통계학자로 세계보건기구와 유니세프의 고문이었고, 스웨덴에서 국경없는의사회와 갭마인더재단을 공동으로 설립한 한스 로슬링의 유작 ‘팩트풀니스’는 빌 게이츠와 버락 오바마가 강력 추천하면서 세계적 베스트셀러가 됐다. 2월 출간되는 이 책은 ‘가짜 뉴스’를 비롯해 확증편향이 기승을 부리고 있는 가운데 강력한 사실을 바탕으로 사건을 확대 해석하거나 관점을 왜곡하지 않고 세상을 정확하게 바라보는 법을 담았다. 천라이 중국 칭화대학 국학연구원 원장은 5월 ‘인학본체론’을 펴낸다. 이 책에서 천라이는 인(仁)에 관한 유가들의 논의를 하나의 학문 체계로 만들고자 시도했다. 중국에서는 2014년에 나왔고 3년의 번역과정을 거쳐 이번에 700쪽 분량으로 한국어판이 나온다. 이 책은 야심찬 시도이자, 엄청난 학문적 도전인 만큼 학계의 커다란 관심을 받고 있다. 리처드 프럼의 ‘아름다움의 진화’는 201년 뉴욕타임스가 올해의 책으로 선정한 화제작이다. 환경에 가장 잘 적응한 자가 아니라 가장 아름다운 자가 살아남는다는 ‘배우자 선택 이론’으로 ‘적자생존’에 기반을 둔 기존의 다윈주의에 반기를 들어 화제가 됐다.
경제 경영 분야에서는 장기화하는 불황과 저성장 시대를 극복하는데 가이드가 돼 줄 책들이 잇달아 출간된다. 스티브 잡스가 세상을 떠난 후 애플의 이야기를 다룬 린더 카니의 ‘팀 쿡’은 4월 중에 출간된다. 수많은 출판사가 이 책을 계약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였을 만큼 이 책에 대한 기대감 역시 높다. 현대, 기아차의 실적 부진과 대비해 최고의 실적을 달성한 도요타의 경영철학의 비밀을 담은 ‘도요타 이야기’(가제)는 상반기 중에 선보인다. 저자인 노지 츠네요시는 2008년 대량 리콜 사태로 존폐 위기에서 놓였던 도요타가 2018년 사상 최대 실적을 올리기까지 도요타 혁신의 모든 것을 담았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는 가운데 ‘위코노미’도 올해 안에 국내 독자들과 만난다. 크레이그 킬버거 등 3인이 공동으로 집필한 이 책은 돈을 버는 동시에 세상을 바꾼다는 이상적 과제가 결코 불가능한 현실이 아님을 강조한다.
3·1 운동을 비롯해 우리의 역사를 돌아볼 기회를 제공하는 책들도 눈길을 끈다. 한국역사연구회는 3·1운동 100주년을 맞이해 ‘3·1운동 100주년 총서’를 5권으로 출간한다. 2월 출간되는 이 총서는 100년 동안 축적된 3·1운동 연구사를 점검하고 성찰하며, 민족운동의 시각을 넘어 일제시대 정치와 권력, 공간과 사회경제, 사상과 문화라는 다각적 시선으로 3·1운동을 살펴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역사’로서 재조명했다. 사계절은 87년 체제에서 성장한 3040세대가 쓴 한국 현대사인 ‘나의 10년’(가제·저자 심용환)을 9월 선보인다.
신형철, 진중권 등 팬덤이 확고한 저자들도 독자들과 만난다. 지난해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으로 커다란 사랑을 받았던 신형철은 4~5월 ‘신형철 두 번째 평론집’(가제)를 펴낸다. 이 책은 ‘몰락의 에티카’ 이후 11년 만에 펴내는 그의 두 번째 평론집이다. 진중권은 5월 ‘철학 오디세이: 고대 편’을 출간한다. 4권으로 기획된 ‘철학 오디세이’의 첫 번째 책으로, 지식으로서의 철학이 아닌 사유하는 방법으로서의 철학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꿰어 선보인다.
이 외에도 ‘알쓸신잡’을 연상하게 하는 책들이 있어 호기심을 자극한다. 박영택은 ‘골동품 수집 미학’(가제)을 출간한다. 매미 형상의 작은 먹물통, 매혹적인 거멍쇠 가위, 망자와 동행하던 꼭두, 환영적 이미지를 제공하는 부엌 등잔 등 작고 오래된 물건에 관한 미술평론가 박영택의 애정과 애착을 담았다. 4월에는 책이 보물이었던 옛날 한 이탈리아의 산촌 몬테레지오 마을에서 책 보부상을 했던 사람들의 삶을 추적한 역사 논픽션 에세이 ‘몬테레지오 유랑책방’(우치다 요코 지음)이 나온다. 15세기 구텐베르크 시대부터 단테, 활판인쇄, 금단의 책, 헤밍웨이 등등으로 이어지며 우리는 ‘책과 서점의 원점’을 사유해볼 수 있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