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치 낚시꾼들을 태운 배가 화물선에 들이받혀 3명이 숨지고 2명이 실종된 사고가 발생했다. 정확한 사고원인이 나오지 않았지만 화물선의 과실치사와 함께 사고해역이 낚시 금지구역인 공해상이고 사망자들이 구명조끼를 입지 않은 상태로 발견돼 안전불감증 지적도 나온다.
11일 오전4시57분께 경남 통영시 욕지도 남쪽 약 80㎞ 해상에서 선장과 선원·낚시객 등 14명을 태운 9.77톤급 낚시어선 무적호가 전복됐다. 이 어선은 갈치 낚시를 위해 여수에서 출항했다. 이날 사고로 선장 최모(57)씨 등 3명이 숨지고 2명이 실종됐다. 해경 관계자는 “전날 오후 출발해 낚시를 마친 뒤 항구로 돌아오는 길에 전복사고가 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했다.
이날 사고는 평소 파고가 높아 위험한 곳인데다 낚시 금지구역인 공해상에서 발생해 낚시어선 업체의 안전불감증과 더 많은 고기를 잡기 위해 무리한 운항을 요구하는 낚시꾼의 요구가 맞물린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무적호를 들이받은 화물선 역시 선장이 잠을 자고 있는 사이 당직사관이 운항 지휘를 맡은 가운데 사고가 발생해 부주의나 태만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해당 화물선의 필리핀인 당직사관은 “충돌하기 전 좌측으로 배를 돌렸으며 어선이 피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사고가 났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경은 전복사고 당시 선박 운항을 총지휘하던 필리핀인 당직 사관 A(44)씨를 업무상 과실 치사와 선박전복 혐의로 불구속 입건해 조사했다. 미얀마인 조타수와 한국인 기관사도 참고인 신분으로 함께 소환했다.
한편 이날 사고에서 생존자 김모(58)씨 등 2명은 배가 완전히 침몰하기 전 물에 잠기지 않아 형성된 공기층인 ‘에어포켓’에서 3시간 가까이 버티다가 구조됐다. 김씨는 “배를 돌린 지 채 30분도 지나지 않았는데 느닷없이 꽝, 우지직 하는 소리가 들렸다. 사무장이 바로 나와 ‘구명조끼 빨리 착용하고 나오라’고 했으나 30초도 채 안 돼 배가 그대로 뒤집어져버렸다”고 말했다.
이날 낚시어선 전복사고는 최근 각종 어선 안전점검 조치와 대책이 잇따르는 가운데 발생해 고질적인 낚싯배의 안전불감증이 재연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날 숨진 3명과 구조된 인원 1명 등 4명은 구명조끼를 입고 있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사고는 앞서 15명이 숨지고 7명이 다친 지난 2017년 12월 인천 영흥도 앞바다 낚시어선 선창1호 사고, 18명이 숨진 2015년 6월 추자도 낚시어선 전복사고에 이은 낚시어선 대형 사고로 기록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12월30일 경남 통영 홍도 인근 해상에 떠 있던 낚싯배에서 불이 나 9명이 인근 낚싯배로 대피하는 일도 있었다. 같은 달 2일에는 인천 굴업도 인근에서 낚시어선 스크루가 바닷속 어망에 감기면서 승객 20명과 선원이 표류하다 해경에 구조되는 일도 발생했다. 지난해 11월에는 전북 군산에서 낚싯배가 추진기 고장으로 표류해 18명이 구조됐고 한 달 전에도 전남 완도군에서 낚시어선이 암초에 걸려 승객 14명이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기도 했다.
이처럼 낚싯배 해양사고는 2013년 77건에서 2017년에는 263건으로 크게 늘었다. 낚시객들이 총 415만명(2017년 기준)으로 4년 전과 비교해 2배 이상 증가하면서 사고도 증가한 것이다.
하지만 안전에 대한 인식은 여전히 낮다. 한국소비자원이 최근 영업 중인 낚싯배 20개를 대상으로 안전실태조사를 벌인 결과 7개(35.0%)의 낚싯배에서는 승객이 승선 중 구명조끼를 상시 착용하지 않았다. 또 18개(90%)는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하기 위해 배에서 던지는 원형 튜브 ‘구명부환’을, 14개(70%)는 야간에 구명부환의 위치를 알리는 ‘자기점화등’을 구비하지 않거나 수량이 부족했다. 승선자명부 작성과 승객 신분증 확인도 부실했다. 조사 대상 모두 승선자명부는 작성했지만 14개(70%)의 낚싯배는 신분증을 확인하지 않았고 5개(25%)의 낚싯배는 성별과 생년월일 등을 누락했다.
이장현 인하대 조선해양공학과 교수는 “낚싯배의 경우 여객선보다 안전장비를 갖추는 것이 구조적으로 취약한 게 사실”이라며 “구조적인 문제와 별개로 무엇보다 선장과 낚시꾼들부터 안전운항에 대한 인식이 높아져야 한다”고 말했다. /통영=황상욱기자 인천=장현일기자 sook@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