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로스쿨 도입 10년, 2019 변호사 그들은]수임 경쟁서 밀리면 끝…"육아휴직? 꿈같은 얘기죠"

변호사 10년새 2만명 늘어

공급 포화…무한경쟁시대로

"휴가 가면 의뢰인 끊길수 있다"

출산·육아휴직 신청 거의 없어

법원휴정기때 출산하면 "효녀"

법의 여신상법의 여신상



# 서울 소재 로스쿨 3기 졸업생인 김경희(37·가명) 변호사는 최근 3년간 몸담았던 법무법인(로펌)을 나왔다. 이제 갓 3개월 된 아들을 돌봐줄 사람이 마땅치 않아 어렵게 꺼낸 육아휴직 요청이 화근이었다. 함께 일해온 파트너 변호사는 김 변호사의 휴직 의사를 듣자마자 난색을 표하며 “업계 사정 잘 알지 않느냐”면서 “새 사건이 시작되기 전에 거취를 결정해달라”고 요구했다. 김 변호사가 근무한 로펌은 40여명의 변호사가 소속된 중형 규모였다. 그는 “육아휴직이 법적으로 보장되고 있지만 중소형 로펌에 고용된 변호사들은 파트너 변호사의 호의에 기대지 않고는 휴직할 수 없다”고 토로했다.

지난 2009년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제도가 도입된 후 10년이 지나면서 변호사 수 증가로 ‘무한경쟁’ 시대가 열리며 업계는 큰 변화를 겪고 있다. 2012년 치러진 첫 시험을 시작으로 매년 약 1,500명 안팎의 변호사가 배출되면서 기존 사법연수원 출신 변호사를 합쳐 10년간 증가 인원은 2만명에 가깝다.



전문직인 변호사조차 육아휴직을 쓰기 힘든 상황은 근무환경이 예전 같지 않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서울 서초동의 한 로펌 대표변호사는 “예전에는 출산휴가나 육아휴직을 요청하는 변호사가 거의 없었다”며 “사법연수원 졸업 후 3~4년 고용변호사로 일하다가 개업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시간 활용이 자유로웠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근에는 경쟁이 치열해져 사건 수임이 힘들다 보니 개업보다는 고용변호사로 오래 일하려는 변호사들이 늘었고 이 과정에서 각종 갈등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중소형 로펌의 대표변호사나 파트너 변호사들도 난감하기는 마찬가지”라며 “사건을 수임해 팀이 구성된 상황에서 한 명이 육아휴직을 쓰게 되면 빈자리를 대체할 인력을 채용하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대형 로펌 소속 변호사들의 경우에도 처지는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이들은 경쟁에서 도태하지 않기 위한 자발적인 선택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상대적으로 인력이 많아 육아휴직을 쓸 수 있지만 대부분 3개월 이내에 복귀한다. 파트너 변호사가 사건을 가져와 본인이 원하는 고용변호사를 선택하는 시스템인 탓에 ‘경쟁에서 밀리면 끝’이라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사법연수원 출신 15년 차 변호사는 “연차휴가를 쓰고 1주일 해외여행 다녀오는 것도 ‘의뢰인이 끊길 수 있다’는 이유로 파트너 변호사들이 싫어하는 마당에 육아휴직은 꿈도 꾸기 힘들다”고 귀띔했다. 법원 휴정기나 판결 직후에 아이를 출산하게 되면 “잘했다”거나 “효자·효녀네”라는 칭찬을 듣는 형편이다.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인근 한 건물에 입주 변호사 사무실 안내판이 부착돼 있다. /연합뉴스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인근 한 건물에 입주 변호사 사무실 안내판이 부착돼 있다. /연합뉴스


이 같은 고충을 해결하기 위해 서울지방변호사회는 2017년부터 ‘복대리(復代理)지원단’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복대리는 타인을 대리해 법률행위를 할 수 있는 권한을 말한다. 의뢰인을 대신해 소송대리인이 된 A변호사가 사정상 B변호사에게 소송대리권을 부여하면 이를 위임받은 B변호사가 복대리변호사가 돼 역할을 수행할 수 있지만 유명무실하다는 게 변호사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서울변회 소속 한 변호사는 “복대리지원단에서 봉사하려는 변호사도 적을 뿐 아니라 복대리인을 썼다가 의뢰인을 빼앗길 수 있다는 불신도 커 제도 취지와는 다르게 정착되지 못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믿을 만한 복대리인을 구한다 해도 사건과 관련된 의뢰인의 개인 사정을 어느 수준까지 공개할 것인지 등의 문제에 봉착한다.

아울러 사법연수원 출신의 고참 변호사들이 젊은 변호사들이 처한 현실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아 상황 개선이 더디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 변호사는 “선배 변호사들은 ‘전문성이 있으니 나가서 개업하면 되지 않느냐’는 식으로 말한다”며 “젊은 변호사들이 ‘울며 겨자 먹기’로 퇴사하는 것에 대해 책임감을 거의 느끼지 않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대한변호사협회나 서울지방변호사회의 회장 선거에서 젊은 변호사들의 근무환경과 관련한 공약은 필수가 됐다. 현재 시행 중인 소송복대리인 지원제도는 지난해 12월 임기를 마친 이찬희 전 서울변회 회장의 주요 공약이었다. 올해 서울변회 회장 선거에 출마한 안병희 변호사는 기존 제도를 보완하는 공약을 내걸었다. 안 변호사는 “여성변호사회 발표를 보면 전문직 여성들도 일·가정 양립의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며 “이는 국가적으로도 큰 손해이므로 사회적 인식이 바뀔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서울변회 등 변호사단체가 전담 변호사를 직접 고용해 소송복대리인이 안정적으로 파견될 수 있도록 기존 제도를 보완, 육아휴직 등 일·가정 양립을 적극 지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백주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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