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로펌 소속 변호사로 일하고 있는 이상혁(44·가명)씨는 새로 수임한 민사소송 사건과 관련한 원고와 피고 간 합의를 위해 장장 4시간에 걸쳐 경상북도 대구지방법원 영덕지원에 갔다. KTX를 타고 포항역까지 간 후 다시 택시로 약 1시간을 이동하면서 10만원가량의 교통비가 들었다. 하지만 계약서상에는 네 번으로 예정된 재판 당일의 교통비만 포함된 터라 추가 교통비는 의뢰인에게 요구하지 못했다. 이 변호사는 “소송이라는 게 재판 기일이 추가로 잡힐 수도 있어 횟수를 예상하기 어렵다”며 “또 재판 외에 합의 등으로 갈 일이 생기기도 하지만 계약 이후에는 비용을 청구해도 의뢰인들이 선뜻 내켜 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수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사건이 있는 곳이라면 변호사들은 어디든 달려간다. 본인의 거주지역과 먼 지역이어도 결코 마다하지 않는다. 서울 지역 변호사들이 수도권 내의 사건만 맡는 것도 이제는 옛말이다. 특히 개업 변호사들은 부산과 제주까지도 간다. 지방에 비해 낮은 서울 지역 변호사 수임료와 추가 식비·교통비 등을 계산하면 수지가 잘 맞지 않지만 ‘사건이 없는 것보다는 낫다’는 인식이 팽배한 탓이다.
예전에는 찬밥 신세였던 성폭력 사건도 요즘에는 수임 경쟁이 벌어진다. 국내 5대 로펌 소속의 한 변호사는 “단순추행 등 성폭력의 범위가 넓어지면서 관련 사건도 많이 발생한다”며 “대형 로펌을 찾아오는 의뢰인들 중 성폭력 사건의 가해자에 해당하는 분들이 많아 변론하기가 까다롭지만 서로 사건을 가져가려고 애쓴다”며 씁쓸해했다.
기간제·임기제 변호사 채용이 늘어나는 것도 공급 증가에 따른 변호사 위상 하락의 단면이다. 지난해 12월 법제처가 ‘1년 기간제 계약직 변호사’를 뽑는 채용공고를 내면서 월급이 세전 250만원도 채 안 되는 처우를 내걸어 변호사 업계에서는 “로스쿨이 도입된 후 점점 처우가 안 좋아졌지만 이렇게까지 떨어질 줄은 몰랐다”는 자조적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아울러 대한법률구조공단은 공단 변호사 고용구조를 최장 11년까지 근무할 수 있도록 제한하는 ‘임기제 변호사’로 변경하는 것을 추진하고 있다. 기존에는 65세까지 정년이 보장됐던 터라 공단 변호사 노조의 반발이 거세다. 지난 14일 공단 소속 변호사들로 이뤄진 노동조합은 사측과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2차 쟁의조정에 실패했다. 노조는 17일 3차 조정회의를 열어 마지막 교섭을 진행해보고 결렬될 경우 파업을 불사하겠다고 예고한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