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경제·마켓

'지한파 경제학자' 후카가와 교수 "경제정책, 정치 이데올로기와 별개…文 '특정 가치관' 과도 의존"

노동개혁 없으면 제조업 불황 초래

자금 유출 압력에 시달릴 수도

고용부진은 노동개혁 지연 결과

'돈으로 실업 구제' 지속성 없어

시장논리로 기업활력 되찾아야

후카가와 유키코 와세다대 정치경제학부 교수 /서울경제DB후카가와 유키코 와세다대 정치경제학부 교수 /서울경제DB



후카가와 유키코 와세다대 정치경제학부 교수는 30년 넘게 한국 경제를 연구한 일본 내 대표적인 한국통(通)으로 한국 경제에 대한 냉철한 분석과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그가 서울경제신문에 보낸 서면 인터뷰 답변에는 한국의 정치·사회적 여건과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한 아쉬움과 우려가 묻어났다. 그의 시각에서 한국 경제는 한마디로 난국이다. 생산성보다 빠르게 솟구치는 인건비 부담이 기업들을 짓누르는 가운데 노조의 정치화, 과도한 교육투자, 가계부채 압박은 갈수록 심화하고 있다.

특히 정치이념과 분리되지 못하는 문재인 정부의 ‘J노믹스’에는 점수를 매기기조차 어렵다는 평가를 내렸다. 후카가와 교수는 “성장전략이 보이지 않는데다 혁신과 노동개혁이 지연되고 있다는 점이 한국 경제가 직면한 가장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하며 경제가 잃어버린 활력을 찾기 위해서는 정치가 아닌 시장 논리에 따르는 정책을 펴야 한다고 주문했다.


-지금 한국 경제가 직면한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우선 대량 생산된 제조품을 수출하는 기존 성장전략을 대체할 새로운 성장전략을 찾지 못하고 따라서 실천하지도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혁신이 지연되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이는 정부 규제뿐 아니라 오픈시스템에 대한 대응이 늦어지고 기업가정신을 긍정하기 어려운 풍토가 사회에 만연한 점 등을 포함하는 의미다. 아울러 노동개혁도 지연되고 있다. 이 때문에 규제에 따른 경직성, 노사협조 부재, 노동의 수급 미스매치, 생산성을 웃도는 임금 상승, 노조활동의 정치화 등이 해소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07년 인터뷰 당시 한국 경제가 정점에 달했으며 성장을 위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지적한 것이 기억에 남는다. 10년 이상 지난 지금 한국 경제에 성장 여력이 있다고 보는가.

△지난 수년간 이어진 잠재성장력 저하와 실질적 수요 부진의 와중에 부동산 시장으로의 자산편중 현상은 자본·노동력투입형 성장이 한계에 달했다는 사실을 반영한다고 생각한다. 기술이나 무역에서 보호주의 확산으로 대외경제 여건이 급속도로 악화하고 있다는 점도 악재다. 그럼에도 대기업의 내부유보는 아직 탄탄하고 연구개발(R&D) 투자도 활발하며 중소기업의 해외진출 의욕이 꺾이지 않고 있다.

다만 성장 여력은 혁신 추진이라는 점에서 인적자원을 통해 추구할 수밖에 없는데 아쉽게도 정치적·사회적 갈등에 따른 낭비가 너무 크다. 그로 인해 가장 중요한 여력이 손실되고 있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한국 경제가 일본과 같은 ‘잃어버린 20년’으로 치닫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크다.

△한국 언론은 종종 ‘잃어버린 20년’을 언급하는데 솔직히 말하면 그 자체가 스스로를 과대평가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20년의 ‘잃어버린’ 시간을 견디려면 상당한 기초체력이 필요하다. 일본이 국제수지 위기나 재정파탄에 빠지지 않고 ‘잃어버린 20년’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당시 일본이 세계 2위의 국내총생산(GDP) 규모와 R&D 비축, 최고 수준의 생산성 등의 여건을 갖춘 상태에서 추락했기 때문이다. 일본은 경상수지 흑자 기조 지속에 더해 비축된 대외자산 규모가 매우 컸고 세계 교역의 30% 정도를 결제하는 기축통화국으로서 기술적으로 신흥국과의 가격경쟁을 피할 수 있었다.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증세 여지가 컸다는 점도 도움이 됐다. 지금도 일본 소비세율은 한국의 부가가치세율보다 낮은 8% 수준이다. 또 고용의 중심이 되는 중소·중견기업의 기반이 탄탄했고 노사협조 풍토가 정착돼 있었으며 연금·의료정책에서 국민의 불만이 폭발하는 사태를 피할 수 있었다. 야당도 사실상 부재했다. 지금의 한국에서 이 중 하나라도 해당하는 조건이 있다고 할 수 있나.

-그렇다면 한국 경제는 앞으로 어떤 길을 걷게 될 것으로 보는가.

△소득주도 성장 정책이 시작되기도 전부터 이미 임금 상승 속도가 생산성 향상 속도를 앞질렀던 탓에 기업들은 갈수록 인건비 부담을 더는 데 경영의 초점을 두고 있으며 이는 노조의 기득권 유지와 정치화, 비정규직 팽창, 과도한 교육투자와 가계부채 압박이라는 악순환으로 이어지고 있다. 공적연금과 의료제도 정비가 고령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가운데 그 간극을 메워야 하는 자영업이 부진에 빠지면서 가계부채는 한층 악화하고 있다.

이런 상태에서 노동시장 개혁을 포함한 구조개혁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한국은 자금유출 압력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중국과의 경쟁에서 패한 제조업은 구조조정으로 내몰리게 돼 고용삭감 압력도 계속될 것이다. 정부는 부실채권 처리에 재정을 쏟아부을 수밖에 없겠지만 이는 더 큰 정치적 갈등을 초래할 수 있다.


-한국 경제가 활로를 찾으려면 정부는 어떤 정책을 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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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체제가 유지되는 한 정치와는 별도인 시장논리가 존재한다. 경제정책은 ‘적폐청산’ 같은 정치적 이데올로기와 별개여야 한다. 특히 거시정책을 수립하는 데는 시장의 생리를 아는 전문가와 실무자가 필요하다.

또 지금의 고용부진은 노동시장 개혁이 지연된 결과다. 재정을 동원해 실업을 구제하려는 정책은 지속성을 가질 수 없다. 결국 건전한 고용을 창출하는 것은 기업이다. 기업활동이 위축되고 노사정이 실효성 있는 개혁을 진전시키지 못하는 한 경제가 나아지기는 어려울 것이다.

아울러 고령화로 인한 복지 부담이 늘어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국민들이 얼마만큼의 세 부담을 감수하고, 어느 정도의 서비스를 기대해야 할지 큰 틀의 컨센서스가 형성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국민의 불안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문재인 대통령 임기가 3분의1가량 지났다. 문재인 정권의 경제정책에 점수를 매긴다면.

△너무도 특정한 가치관에 기반한 것으로 보인다. 순수한 경제정책에 점수를 매기기는 어렵다.

-일본도 민주당 정권에서는 성장전략이 없다시피 했지만 ‘아베노믹스’가 고용회복과 기업 수익 증대라는 성과를 내고 궁극적으로는 일본 경제를 부활시키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데.

△일본 경제가 부활했다고 하기에는 아직 너무 미약하고 이제 겨우 디플레이션 압력이 약해졌다고 볼 수 있는 상태다. 대담한 양적완화 정책으로 상징되는 아베노믹스는 시장이 더 이상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불신을 내비칠 경우 장기금리 급등으로 새로운 위기국면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이 때문에 정부는 항상 성장전략을 필사적으로 생각하게 됐으며 기업은 국제경쟁력을 염두에 둔 인수합병(M&A)이나 국내 투자를 고려할 여유가 생겼다는 점이 플러스 요인이다.

고용 면에서도 생산성과 함께 임금 상승이 본격화하기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 다만 우수한 젊은 인재들이 공무원이나 대기업 취업이 아니라 벤처 창업을 지향하게 됐다는 점에서 질적 전환은 착실하게 진전되고 있다고 본다.

-일본과 마찬가지로 한국도 저출산 고령화 문제가 심각하다. 한국보다 저출산 고령화를 한발 먼저 겪은 일본 입장에서 한국에 조언을 한다면.

△고령화를 멈출 수는 없고 문제는 저출산이다. 한국에 남겨진 시간은 베이비붐 세대의 자녀인 ‘에코 세대’의 출산연령 기간까지 앞으로 10년도 채 안 된다. 젊은 세대가 처한 경제·사회환경이 개선되지 않는 한 세계 최저 수준의 출산율을 끌어올릴 수는 없다. 노동개혁과 교육개혁 등 다각도의 구조개혁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마지막으로 오랜 기간 한국을 연구한 경제학자로서 한국에 보내는 메시지가 있다면.

△민주주의나 자본주의는 왕조적 도덕의 틀에 끼워 넣을 정도로 훌륭하지도, 순수하지도 않다. 그럼에도 관용과 혁신이 뒷받침된다면 비약적인 활력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과거 반세기 동안 한국 경제발전의 본질은 ‘적폐’와는 다른 곳에 존재했다고 생각한다. /신경립 국제부장 klsin@sedaily.com

신경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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