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한 인터넷 상거래 사이트에 올라온 중고품 판매 글이 네티즌의 관심을 끌었다. “한국 PC 패키지 게임의 역사를 구매해주세요”라는 제목으로 올라온 이 글은 중고 PC 패키지게임 267개를 한데 모아 1억원에 살 사람을 구하고 있다. 모으는데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들었을 판매 상품도 흥미롭지만, 더 관심을 끈 건 이 제품의 판매에 나선 사람의 신원이다. 글을 올린 사람은 중소 게임업체 비트메이지의 대표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진짜일까. 장세용 비트메이지 대표는 서울경제신문과의 통화에서 “내가 올린 글이 맞다”며 “지금 40대 초반인 내가 중학교 때부터 모은 게임들로 30년 전 게임패키지 하나의 가격이 4~5만원 선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상당히 큰돈을 들인 수집품”이라고 말했다.
비트메이지는 중소게임개발사로 국내 첫 게임보이어드밴스(GBA) 게임인 ‘아이언키드’와 X박스용 게임 ‘던파360’을 만든 회사다. 최근에는 모회사인 디지털프로그와 모바일 MMORPG ‘소울게이지’를 출시한 바 있다. 직원은 5명 남짓에 불과하지만, 업계에서는 개발력을 갖춘 게임사로 평가받는다.
장 대표가 지난 30년간 소중히 모은 자신의 애장품 판매에 나선 배경에는 악화하는 국내 게임산업 환경이 있다.
그는 “신작 출시를 앞두고 회사 운영비를 마련하기 위해 소장품을 내놨다”며 “예전에는 개발력만 있으면, 수익이 보장돼서 회사 규모와 상관없이 여기저기서 투자 제의가 잇따랐는데, 최근에는 중국시장이 닫히고, 게임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심화하면서 돈줄이 마르고 있다”고 한탄했다.
그럼에도 장 대표는 국내 게임산업에 대한 애착을 가감 없이 드러냈다. 그는 “국내에서 제작한 게임들에 큰 자부심을 느껴 모으게 되었다”며 “국내 게임업계는 선진국에 비해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세계를 호령하고 있다”고 말했다.
장 대표가 올린 PC 패키지 게임을 판매한다는 글에는 곧장 국내 게임업계에 부정적인 인식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댓글이 달리기도 했다. 장 대표는 “‘쓰레기를 팔고 있다’는 댓글에 상처받았다”며 “많은 개발자가 젊음을 바친 게임산업이 국내에서만큼은 정당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라고 털어놨다.
장 대표는 PC 패키지 게임 묶음도 개인보다는 기업이 사줬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장 대표는 “운영비가 필요해 어쩔 수 없이 내놓긴 하지만 어느 정도 규모가 되는 회사가 사서 한국 PC게임의 역사와 같은 이 제품을 유지·보존해줬으면 한다”며 “패키지를 그대로 이용해 수익을 낼 수 있는 게임박물관 등이 물건을 사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현재 이글은 내려간 상태다. 장 대표는 “한 달 정도 올리고 안 팔리면 내려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반응이 뜨거워 볼 사람은 다 봤다고 생각한다”며 “아직 판매되지 않았으며, 기업체에서 문의가 들어온 건도 없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