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계에서는 정부가 이번에 발표한 ‘수소경제 활성화 로드맵’에 원자력 기술을 활용한 대량 수소생산체계인 초고온가스로 상용화 계획이 일부라도 언급되기를 바랐다. 탈원전 정책 기조와는 맞지 않더라도 정부가 수소경제 활성화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였기 때문에 대규모로 수소를 생산할 수 있는 이 기술을 배제하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감에서였다. 로드맵 논의기구였던 수소경제추진위원회에서도 초고온가스로 연구개발(R&D) 지원 방안을 산업통상자원부에 제안했다. 추진위에 참여했던 핵심관계자는 “산업통상자원부도 원자력 수소생산 관련 자료를 요청해 초고온가스로에 대한 제안서를 넘겼는데 발표한 것에는 전혀 내용이 담기지 않았다”고 말했다.
실제로 정부가 발표한 로드맵에는 원자력을 활용한 수소생산 방식이 전혀 언급돼 있지 않다. 정부는 대신 △부생수소 △추출수소 △수전해 △해외생산 수소의 확대·도입을 통해 오는 2040년까지 국내에 연간 526만톤의 수소를 공급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2040년까지 현재 900대 수준인 국내 수소차 보급을 290만대로 늘리고 14개에 불과한 수소충전소를 1,200개소 확충하는 등 급진전한 수소경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안정적인 수소공급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관련 업계와 전문가들은 이 같은 생산전략이 목표치를 감당하기 힘들거나 환경오염의 우려가 커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초고온가스로를 통해 대량의 수소를 싼값에 얻어낼 수 있다면 수소경제로 전환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며 “추출수소의 경우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는 액화천연가스(LNG)를 개질해서 추출해야 하는데 정부 목표치만큼 늘리기에는 한계가 있어 보이고 신재생에너지의 잉여전력을 활용하는 수전해 방식도 경제성을 갖기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대규모 수소공급을 위해서는 원자력을 활용한 수소생산 방법이 가장 현실적이라는 주장이 나온다. 4세대 원자로 중 하나인 ‘초고온가스로’ 4개를 붙여 하나의 발전소를 만들면 연간 14만톤의 수소를 1㎏당 3,000원 이하로 생산할 수 있다. 발전소 7개만 지어도 정부의 2040년 수소생산 목표치(526만톤)의 20%가량을 책임질 수 있는 수준이다. 발전소 부지 규모도 현재 최신형 원전의 절반이면 충분하다. 재생에너지를 활용한 수소생산 방식(수전해)과 달리 24시간 가동이 가능하기 때문에 앞으로 폭증하는 수소의 기저 생산시설로도 활용할 수 있다. 게다가 초고온가스로는 냉각제로 ‘헬륨 기체’를 사용해 후쿠시마원전에서 냉각제인 물이 급격하게 기체로 변하면서 발생했던 폭발의 위험이 없다. 세계 최고의 안전성을 갖춘 현재 우리나라 원전보다도 안전성이 더 뛰어나다는 의미다.
이러한 장점 덕에 초고온가스로는 지난 2005년 노무현 정부가 발표한 ‘친환경 수소경제 구현을 위한 마스터 플랜’에도 수소 제조의 핵심전략 중 하나로 담겼다. 발표 1년 뒤에는 한국원자력연구원이 정부 과제로 R&D에 착수했고 한국전력연구원이 실험실 규모에서 100일 이상 장기운전에도 성공했다. 하지만 탈원전을 표방한 이번 정부가 들어서면서 기술 개발은 실증 단계로 넘어가지 못했다. 2017년 8월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사실상 차세대 원전 개발 중단을 선언하면서 초고온가스로의 실증사업에 예산을 배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당초 2026년까지 실증 원자로 설계를 완료하고 민관 공동투자를 통해 상용화한다는 계획이 기약 없이 밀리게 됐다.
연구개발을 담당하고 있는 원자력연구원의 한 핵심관계자는 “정부가 탈원전 정책을 추진하면서 차세대 원자로 개발에 대한 실증사업 예산을 배정하지 않고 있다”며 “100억원에 가까웠던 관련 프로젝트 예산은 현재 30억원 수준으로 쪼그라들어 실증사업은 엄두를 내지 못하고 현재 기술을 업그레이드하는 수준의 연구만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번 로드맵에 언급만 됐더라도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실증사업에 대한 예비타당성조사를 통과시킬 가능성이 열리는 것이었는데 빠지게 돼 아쉽다”며 “이번 일로 이번 정부 내에 실증사업을 추진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사라졌다”고 덧붙였다.
산업부는 아직 이 기술을 실험실 단계에 머무르고 있는 기술이라며 기술 성장 가능성을 일축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과학계에서는 궁색한 해명이라고 평가했다. 과학계의 한 관계자는 “정부가 의지만 있다면 당초 계획대로 2026년까지는 힘들더라도 2030년 중반에는 분명히 상용화가 가능한 기술”이라며 “이번 로드맵은 수소공급의 기본도 모르고 알맹이를 뺀 것”이라고 지적했다. /세종=강광우기자 pressk@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