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 60주년을 맞이할 때까지 꾸준히 음악을 발표하고 활동하는 가수는 과연 몇이나 될까. 긴 시간 동안 대중의 사랑을 받는다는 것이 쉽지 않은 만큼 데뷔 60주년은커녕 10주년을 맞이하기도 전에 많은 가수들이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진다. 1961년 여섯 살 때 국내 최연소 나이로 가요계에 데뷔해 인생의 전부를 음악에 쏟아부은 하춘화가 데뷔 60주년을 목전에 뒀다.
지난해 12월 데뷔 60주년 기념음반을 미리 발표한 가요계의 여왕 하춘화는 최근 서울경제신문을 만나 “할 수만 있다면 백 살까지도 노래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섯 살 때 가수가 뭔지 모르고 데뷔해 철들기 시작하면서 가수가 이런 것이구나 느꼈다”며 “한 직업을 60년 하면 여든 살 정도는 돼야 할 것 같은데 일찍 데뷔를 해서 아직 60대라는 점이 낯설기도 하고 사실 실감이 잘 안 난다”고 소회를 밝혔다.
지치지 않고 쉼 없이 음악 활동을 이어가는 비결을 묻자 하춘화는 “식지 않는 열정”이라고 답했다. “열정이 식는다면 제가 무대에서 내려와야 할 때가 아닌가 싶어요. 열정이라는 것은 어떤 어려움에도 그걸 잘 견뎌내고 이겨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가수뿐 아니라 어떤 일에나 어려움이 있지만 그것을 슬기롭게 극복하느냐 못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성패가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며 한 분야에서 60년 가까이 업적을 쌓아온 내공을 드러내기도 했다.
자신의 수많은 히트곡 가운데 가장 애정이 가는 노래를 꼽으라면 주저 없이 ‘물새 한 마리(1970)’를 꼽겠다고 했다. 그는 “그 노래를 부르던 당시 중3이었는데, 때 묻지 않고 순수했던 그때의 제가 떠올라서 굉장히 마음이 짠하고 아릿하게 다가온다”고 말하며 회상에 잠겼다.
이리역 화약 폭발 사고로 목숨을 잃을 뻔한 일, 시민회관(현 세종문화회관) 화재 현장에서 구사일생한 사건 등을 비롯해 별별 일을 다 겪었지만 하춘화에게는 그 무엇보다 또렷한 추억이 있다. 60년 가수 생활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을 묻자 하춘화는 지난 1985년 분단 40년 만의 평양 최초 공연 당시 여자 가수 대표로 북한을 방문했던 일을 꼽았다. 당시 평양 관객들은 박수를 치는 것도 지시를 받았던 만큼 열광적인 반응은커녕 정적이 흘렀지만 무대에 섰다는 것 자체가 그에게는 큰 감동으로 남았다. “요즘은 교류가 많아졌지만 당시에는 동포라고 해도 주적으로 생각했던 만큼 평양에 가서 공연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죠. 그때 동포들 앞에서 노래한 벅찬 마음이 잊히지 않아요.”
가요계 대선배답게 하춘화는 젊은 가수들과도 소통하며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다. 하춘화는 “항상 음악 장르에 열려 있다. 이런 스타일만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돌 후배 중에서 노래 잘하고 잘 맞는 작품이 있다면 언제라도 같이할 각오가 돼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방탄소년단과 엑소가 국위선양을 많이 하고 있다”며 “그들의 노래를 처음부터 끝까지는 모르지만 K팝을 세계에 알리고 있는, 문화로서 외교를 하는 자랑스러운 후배들이라 선배로서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요즘 하춘화가 가장 힘을 쏟는 것은 대한민국 전통가요를 계승·발전시키는 일이다. 올해 그의 고향인 전라남도 영암에 트로트 가요센터가 들어설 예정이다. 하춘화 아트홀과 전시관도 함께 개관한다. 그는 “개관 후 할 일이 산적하다”며 “가요제를 만들어 매년 인재들을 모으고 훈련을 시켜서 그야말로 최고의 전통가수를 만들어내도록 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트로트 가요센터가 탄생하게 된 데는 하춘화 아버지의 공이 컸다. 1919년생으로 올해 우리 나이로 101세가 된 그의 아버지 하종오씨는 하춘화 데뷔 때부터 지금까지 모든 자료와 그와 같이 활동했던 대선배들 자료까지 모아 트로트 가요센터가 만들어지는 데 이바지했다. 하춘화는 “전통가요의 모든 역량을 영암으로 모으는 것이 제가 해야 할 일”이라고 강조하며 “후배들에게 강의하고 그들을 훈련시키며 아트센터에서 공연해 프로패셔널한 인재를 만들어내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잘 운영해 대한민국의 사랑받는 명소가 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열정을 드러냈다.
하춘화는 ‘데뷔 60주년’이 팬들에게 기쁨이 될 수 있도록 각별하게 마음을 쏟고 있다. 기념앨범을 2년가량 앞서 발매하게 된 것 역시 관객들이 데뷔 60주년 기념 공연을 즐기기 전 곡들을 충분히 귀에 익힐 수 있는 시간을 주기 위해서였다. 그는 “항상 공연 2~3년 전에 기념 앨범을 내왔다”며 “관객들이 생소한 신곡보다는 귀에 익은 노래에 더 많이 공감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번 앨범의 타이틀곡은 ‘마산항에 비가 내린다’이다. 2010년 마산·진해시가 창원시로 통합되면서 고향을 잃은 사람들을 위한 노래다. “마산시가 사라진 것에 아쉬워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다행히 마산항은 남아 있더라고요. 제가 마산에 있는 경남대를 다녀서 마산을 잘 아는 만큼 직접 가사를 붙였습니다.”
신곡은 지난해 12월 KBS 1TV ‘아침마당’에서 처음 선보인 후 빠르게 반응이 오고 있다. 하춘화 스스로도 “의아하고 당황스럽다”고 말할 정도로 뜨거운 반응에 하루에 1,000장 이상씩 주문이 들어오고 있다. 이번 앨범은 데뷔 60주년 기념 앨범이면서 CD로 선보이는 하춘화의 마지막 앨범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특별하다. 하춘화는 “좋은 무대, 좋은 음악을 한다는 게 굉장히 어렵다”며 “이번 신곡도 심사숙고하고 또 거르고 걸러서 4년 만에 나왔다. 좋은 작품만 있으면 신곡을 자주 낼 텐데 좋은 작품을 만나는 것이 하늘의 별 따기”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대중가요는 노래가 나와서 대중의 사랑을 받았을 때 비로소 그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며 “사랑을 못 받고 외면당한다면 대중가요로서의 자격이 없다”고 강조했다.
꾸준히 신곡을 선보이는 것과 함께 하춘화는 ‘올림픽 나가듯이 공연준비를 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5년마다 기념 공연을 여는 그는 공연이 끝나자마자 바로 다음 공연준비 모드에 돌입한다. 데뷔 60주년 기념 공연에는 피아노 연주를 선보이기 위해 1년 전부터 피아노 연습을 시작했다. “지금까지 저의 공연을 한 번도 빠지지 않고 기념 공연에 와주신 분들이 ‘이번 공연이 더 좋다’고 말해주실 때마다 굉장히 보람을 느낍니다. 그분들이 저를 보러왔는데 공연을 보고 실망하고 나가신다면 용납이 안 돼요. 그건 제가 공연을 안 하는 것만 못하고, 그 상황을 용서할 수 없기 때문에 철저하게 준비를 해서 오신 관객들이 시간과 돈이 아깝지 않다고 느꼈으면 합니다.”
데뷔 70주년, 80주년 기념 공연도 기대된다고 하자 하춘화는 “몇 살까지 노래하겠다는 목표는 없다”고 말했다. “백 살까지도 하고 싶지만 제가 하고 싶다고 되는 것은 아니잖아요. 목소리가 나와줘야 하고 관객들이 하춘화가 노래를 그만했으면 좋겠다, 목소리가 예전 같지 않다고 하면 그때 그만해야 하지 않을까요?”
◇She is…
△1955년 전남 영암 △1961년 가요사상 최연소 레코드 출반 (만 6세) △1985년 분단 40년 최초 남북 예술인 교환 공연에서 남측 여자 가수 대표로 평양 공연 △1991년 최다 개인 발표회로 세계 기네스북 등재(1,260일) △2006년 성균관대 철학 박사 학위 취득(예술철학전공) △2009년 저서 ‘아버지의 선물’ 출간 △2010년 최초로 가수 노래비(하춘화 노래비) 건립 △2011년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 은관문화훈장 △2018년 데뷔 60주년 기념 앨범 발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