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시아 정부가 중국의 재정·기술 지원으로 추진해온 22조원 규모의 말레이시아 동부해안철도(ECRL) 사업을 결국 취소하기로 했다. ECRL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추진하는 ‘일대일로(一帶一路·육해상 실크로드)’ 구상의 핵심 사업으로 꼽히는 만큼 중국으로서는 적지 않은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
27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등에 따르면 아즈민 알리 말레이시아 경제부 장관은 전날 기자들과 만나 철도 시공사인 중국교통건설그룹(CCCC)과의 계약을 취소하기로 최종 결정했다고 밝혔다. 그는 “막대한 비용으로 이 사업을 끝까지 이어갈 재정적 역량이 안 된다”며 “프로젝트를 취소하지 않으면 연간 이자 비용만 거의 5억링깃에 이를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지 언론은 말레이 정부가 810억링깃(약 22조원)으로 추산되는 사업비를 절반가량 수준으로 줄이고 현지 기업의 참여비율을 높일 것을 요구했지만 CCCC 측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아 계약 취소로 이어졌다고 전했다.
말레이반도 서부 클랑항구에서 동부 툼팟까지 668㎞ 구간을 철도로 잇는 ECRL은 중국 일대일로 구상의 핵심 사업 중 하나다. 중국은 이 사업을 통해 미군이 지배하는 말라카해협을 거치지 않고 중동에 접근할 수 있는 통로를 확보할 것을 기대해왔다.
하지만 지난해 5월 총선에서 친중 성향의 전 정권을 무너뜨리고 집권한 마하티르 모하맛 총리는 당초 550억링깃으로 예상됐던 사업비가 과도하게 늘어난데다 수익성이 의심된다는 이유로 그해 7월 ECRL 사업을 보류했다. 마하티르 정부는 앞서 2조2,000억원 규모의 가스·송유관 사업도 취소한 바 있다.
일대일로 선상의 국가들이 부채증가와 중국에 대한 예속 우려로 잇따라 사업투자를 축소하거나 취소하고 나서는 가운데 말레이시아도 발을 빼기로 최종 결정하면서 올해 6년째로 접어든 중국 일대일로 사업은 심각한 차질을 빚게 됐다.
지난해 12월에는 파키스탄이 경제난을 이유로 중국에 2조원 규모의 화력발전소 사업 계획을 보류하겠다고 통보했으며 미얀마는 중국 국영 투자회사인 중국 국제신탁투자공사(CITIC)가 주도하는 서부 지역 차우퓨 항구 사업의 규모를 당초 8조2,000억원에서 1조5,000억원 규모로 대폭 축소했다. 아프리카 시에라리온도 중국 기업과 함께 3,400억원 규모의 공항을 건설하려던 계획을 지난해 철회한 바 있다. /베이징=최수문특파원 chsm@Sedaily.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