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기고] 징벌배상과 지식재산 금융

박원주 특허청장

건국 초부터 특허 중시해온 美

숱한 발명으로 혁신 생태계 조성

韓도 징벌적 배상 시행 계기

IP대출 등 시장 활성화될 것




지난 2014년 미국 피츠버그 연방법원은 반도체 회로에 관한 특허소송에서 15억달러(약 1조7,000억원)라는 천문학적인 손해배상액을 판결했다. 1심 법원의 침해배상 판결액 가운데 사상 최대다. 고의적인 특허침해가 인정돼 특허권자가 입은 손해액의 최대 3배까지 배상하는 ‘징벌적 손해배상’을 적용했기 때문이다.

미국은 최초로 특허권을 헌법에 규정한 국가다. 특허제도로 기술혁신을 촉진해 당시 유럽에 비해 뒤처진 경제를 발전시키려 한 것이다. 1793년에는 특허법에 침해 손해액의 최소 3배를 배상하는 징벌배상제도를 도입했다. 이렇게 건국 초부터 이어진 강력한 특허 보호제도는 전구·전화기·비행기 등 수많은 발명품을 탄생시키는 혁신생태계를 조성했고 미국은 2차 산업혁명을 주도했다.


1,000여건의 특허를 획득한 에디슨은 그중 일부를 팔거나 라이선스를 줘 연구개발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했다. 전화기를 발명한 벨은 에디슨의 탄소 마이크로폰 특허를 사들여 전화기의 단점을 보완했다고 한다. 최초로 만년필을 발명한 루이스 워터맨은 펜 제조 특허를 담보로 5,000달러를 빌릴 수 있었다.

미국의 특허 중시정책은 21세기 들어서도 테슬라·포드·GM 등 많은 기업이 특허를 담보로 필요한 자금을 조달할 수 있게 했다. 윌리엄 만 UCLA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미국에서는 특허 보유 기업의 38% 정도가 특허를 담보로 자금을 조달했다. 이렇듯 특허 시장 활성화는 특허를 강력하게 보호하는 데서 시작된다.


우리나라에서도 올 7월부터 고의적 특허 침해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가 시행된다. 이 같은 내용의 특허법 개정안이 오랜 논의 끝에 지난해 국회를 통과했기 때문이다. 앞으로 특허 거래와 이전 수요가 점차 늘어나면서 자연스럽게 특허에 대한 시장가격이 형성되고 거래시장도 열릴 것으로 기대된다. 미국처럼 특허가 대출의 담보물이나 투자의 대상으로 활발히 이용되는 전기가 마련된 것이다.

관련기사



지난해 12월 특허청은 우수특허를 보유한 중소기업의 창업과 성장을 지원하기 위해 ‘지식재산(IP) 금융 활성화 종합대책’을 금융위원회와 함께 발표했다. 이 대책은 부동산이나 신용도가 부족해 자금난을 겪는 중소기업이 지식재산을 통해 보다 쉽게 자금을 조달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마련됐다. 이를 위해 정부는 지식재산 금융 규모를 지난해 4,500억원에서 오는 2022년까지 2조원으로 대폭 늘릴 계획이다.

우선 산업은행을 비롯한 국책은행에서 주로 시행되고 있는 IP담보대출이 민간 시중은행으로 확산되도록 유도할 계획이다. 은행들이 우수 특허 보유기업에 금리우대와 대출한도 상향 등 다양한 대출상품을 출시하도록 지원할 방침이다. 현재 은행들이 IP 담보대출을 확대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인 대출금의 회수 리스크를 덜기 위한 회수지원사업도 추진한다. 정부와 은행들이 공동 출연한 회수전문기구가 채무불이행 시 담보 IP를 매입·수익화하는 구조이다.

아울러 모태펀드 등 정책자금을 통한 IP 투자펀드 조성을 확대하고 성장금융과 4년간 5,000억원 규모의 기술금융투자펀드를 공동 조성해 우수 IP를 보유한 기업에 대한 투자를 촉진한다. 민간자금의 유입을 촉진하기 위해 IP 자산을 기반으로 유동화 증권 발행도 추진하고 벤처캐피털 펀드의 IP 직접 소유를 허용하는 등 관련 규제도 대폭 완화할 계획이다.

또한, 중소기업이 IP 가치를 제대로 평가받아 대출이나 투자를 통해 필요한 자금을 원활하게 조달할 수 있도록 가치평가 비용 지원을 늘려나갈 것이다. 이와 함께 해외에 진출하는 중소기업의 지식재산 비용 부담을 분산·완화하기 위한 특허공제사업을 올해부터 시행한다. 특허공제사업은 중소기업이 월별로 일정 부금을 납입하고 해외출원이나 특허분쟁에 필요한 비용을 대여받아 사후 분할 상환하도록 하는 지원제도다.

금융을 의미하는 ‘파이낸스(finance)’의 어원은 목표·완성을 뜻하는 라틴어 ‘피니스(finis)’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금융이 경제 주체가 목표를 달성하도록 도와준다는 의미이다. 징벌배상제도 도입으로 지식재산의 거래시장이 열리고 IP 금융이 우리 산업과 경제의 활력 제고라는 목표를 달성하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다.

서민우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