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올해 국회 시정연설에서 강제징용 배상 판결과 레이더 조사(照射) 논란 등으로 갈등의 골이 깊어진 한국에 대한 언급을 아예 하지 않았다. 종군위안부 문제로 갈등을 겪은 지난해 한국에 대해 ‘가장 중요한 이웃’이라는 표현을 삭제해 ‘의도적 홀대’ 논란을 일으킨 아베 총리가 올해는 한국을 아예 거론조차 하지 않자 한국 ‘패싱(외면)’ 외교전략을 구사하겠다는 의도를 내비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반면 북한에 대해서는 국교 정상화를 올해 목표로 내세우는 등 미사일 도발과 대응에 초점을 맞췄던 지난해와 달리 거리를 좁히려는 태도를 보였다.
아베 총리는 28일 시정연설에서 “북한과의 불행한 과거를 청산하고 국교 정상화를 목표로 하기 위해 미국과 한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와도 긴밀히 연대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연설에서 한국이 거론된 것은 이때 한 번뿐으로, 그의 역대 시정연설 가운데 가장 긴 총 1만2,800자의 연설문에서 한국에 관한 내용은 사실상 완전히 배제됐다.
아베 총리는 앞서 2017년까지는 매년 시정연설에서 한국을 ‘전략적 이익을 공유하는 가장 중요한 이웃’이라고 표현했지만 지난해 처음으로 이 표현을 삭제했다. 하지만 이런 표현을 빼면서도 최소한의 ‘협력관계’에 대해 언급했던 지난해와 달리 올해는 아예 언급 자체를 하지 않아 향후 한국에 대해 강경한 대응 자세를 견지하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으로 해석된다.
반면 중국과 북한의 관계에 대해서는 개선 의지를 강조했다. 특히 북한에 대해서는 지난해의 경우 “핵과 미사일 도발에 굴복하지 않는다”고 말했지만 올해는 ‘국교 정상화’를 언급할 정도로 전혀 다른 태도를 보였다. 아베 총리는 “(내가) 김정은 조선노동당 위원장(북한 국무위원장)과 직접 마주 보며 모든 기회를 놓치지 않고 과단성 있게 행동하겠다”며 “북한과의 불행한 과거를 청산하고 국교를 정상화하는 것을 지향하겠다”고 말해 북한과의 대화에 강한 의욕을 드러냈다.
한편 한일 간 냉전 속에 아베 총리의 인기는 내부결속에 힘입어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이날 니혼게이자이신문이 공개한 설문조사 결과 아베 내각 지지율은 53%를 기록해 지난해 12월 조사 때보다 6%포인트나 급등했다. 이런 배경에는 한국과의 ‘레이더 갈등’에 따른 내부 여론 결집이 주된 요소로 자리 잡은 것으로 분석된다. 같은 조사에서 한국 해군 구축함이 자위대기에 화기 관제 레이더를 조사한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자세를 묻는 항목에서 응답자의 62%가 “더 강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한편 아베 총리는 이날 자신의 정치적 숙원인 개헌에 대해서는 역풍을 우려해 국회에 구체적 개헌안 제출 요구 없이 ‘논의 심화’만을 주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