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야당인 민주당에 반대를 무릅쓰고 러시아 기업 3곳에 대한 제재를 해제해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러시아 커넥션’(러시아의 미 대선 개입) 수사가 트럼프 대통령에게 불리하게 흘러가는 상황에서 재무부가 수사의 핵심 열쇠를 쥔 올리가르히(신흥 재벌)와 관련된 기업들을 제재 리스트에서 삭제했기 때문이다. 연방정부 셧다운(부분 업무정지) 사태가 사상 최장기간인 35일 만에 일단락됐지만 이번 사태로 미국이 또 다시 셧다운 정국에 휩싸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미 재무부는 27일(현지시간) 밤 러시아 억만장자 올레그 데리파스카와 관련된 기업 3곳에 대한 제재를 해제한다고 밝혔다. 이번 결정으로 세계 2위 알루미늄 제조사인 루살과 루살의 모기업 EN+ 그룹, 전력기업인 유로시브에너고 JSC가 미국의 제재 리스트에서 빠졌다.
다만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측근으로 ‘러 커넥션’과 사이버 테러 배후로 지목된 데리파스카에 대한 제재는 유지됐다. 그는 지난 트럼프 대선 캠프에서 선거대책본부장을 맡은 폴 매너포트와 긴밀한 사이로 알려지면서 지난 4월 루살 등 러시아 기업 12개와 함께 제재 리스트에 올랐다.
앞서 재무부는 지난달 의회에 루살 등 3개사에 대한 제재 해제 계획을 통보했다. 재무부는 루살 등 3곳이 데리파스카와의 지분 관계를 대폭 정리했고, 광범위한 회계 감사 등 재무부 주장을 대폭 받아들이면서 이번 결정이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데리파스카는 미 재무부가 제재 해제 전제로 내건 조건들을 받아들여 EN+ 지분을 70%에서 44.95%로 줄였고, EN+는 재무부 요구대로 골드만삭스 임원 등으로 이사회 멤버들을 대거 교체했다.
원자재 시장은 이번 결정으로 알루미늄 가격이 안정세로 돌아설 것으로 기대하고 있지만 민주당은 로버트 뮬러 특별검사가 트럼프 대선 캠프 비선 참모를 기소하며 수사 강도를 높이는 상황에서 부적절한 조치가 이뤄졌다며 강력히 반발하고 나섰다. 한때 기업가치가 92억달러에 달했던 루살은 미국의 제재 리스트에 오른 러시아 최대 기업이라는 점에서 푸틴 대통령을 압박할 수 있는 강력한 무기로 꼽혀왔기 때문이다. 하원을 장악한 민주당은 이달 17일 제재 유지 결의안을 압도적으로 통과시키며 백악관에 경고 메시지를 날렸지만 재무부는 제재 해제를 강행했다. 로이드 도깃 민주당 하원의원은 이날 성명에서 “야비한 거래에 대한 하원의 반대와 므누신 재무장관의 증언을 거부하고 트럼프 행정부가 러시아 편애를 멈추지 않고 있다”고 규탄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민주당이 다음달 15일까지 국경장벽 예산안 협상에 나섰지만 이번 사태가 논의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5일 셧다운 종료 성명을 발표한 지 불과 이틀 만에 또다시 셧다운 가능성을 언급하며 민주당과 혈투를 예고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미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과의 인터뷰에서 “새롭게 협상단을 꾸린 17명의 의원들이 협상 타결에 이를 가능성을 50대50 미만으로 본다. 협상이 자신의 기대를 충족시킬 것이라고 보지 않는다”면서 필요하다면 긴급 조치를 꺼내들겠다고 경고했다. 믹 멀베이니 미국 백악관 비서실장대행도 이날 CBS 방송에 출연해 ‘협상 결렬시 트럼프 대통령은 다시 셧다운 조처를 할 의향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그렇다”며 연방정부 공무원 수십만명이 또 다시 대혼란에 빠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