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가운데 세계 1위의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업체인 TSMC가 웨이퍼 불량 사고로 신뢰도에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 불량이 발생한 웨이퍼의 금액은 5억달러를 훌쩍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TSMC가 지난해 8월 랜섬웨어 감염으로 생산라인을 중단한 데 이어 6개월 만에 또다시 사고에 휘말리면서 경쟁사인 삼성전자가 반사이익을 볼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일각에서는 삼성전자가 메모리 수요 감소에 파운드리 등 비메모리 사업을 확대하고 있는 만큼 TSMC의 불량이 거래선 확대의 기회가 될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이날 외신에 따르면 TSMC의 팹14B에서 300㎜ 웨이퍼 수만장 규모의 불량이 지난 28일 발생했다. 정확한 피해 규모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최대 9만장 규모의 웨이퍼에 불량이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팹에서는 엔비디아·AMD·화웨이·미디어텍 등에 공급하는 12·16나노 중앙처리장치(CPU), 그래픽처리장치(GPU),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등을 생산하고 있다.
사고의 원인으로 지목된 것은 품질 기준을 통과하지 않은 감광액(PR·포토레지스트)이다. 빛의 특정 파장에 반응해 성질이 바뀌는 감광액은 반도체의 패턴을 그리는 노광 공정에서 쓰이는 핵심재료다. TSMC는 사건 이후 “규격을 벗어난 화학물질이 납품돼 제조 공정에 쓰였다는 사실을 발견했다”며 “반도체 수율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돼 문제의 원인을 조사하고 고객에게 연락했다”는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TSMC에 감광액을 공급하는 일본 신에쓰화학과 JSR, 미국 다우케미컬 중 어느 회사의 제품이 문제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이번 사건으로 TSMC는 매출에 상당한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 16·20나노 제품은 지난해 TSMC 매출에서 23%, 2017년 매출에서 25%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주력제품이다. 시장조사기관 IC인사이츠가 지난해 펴낸 보고서에 따르면 300㎜ 웨이퍼로 20나노 이하 제품을 생산할 경우 웨이퍼당 매출은 6,050달러(약 675만원)에 달한다. 파운드리 특성상 어떤 회사의 어떤 제품이냐에 따라 웨이퍼의 가격이 다르기는 하지만 대략 5억4,450만달러(약 6,075억원)의 손해를 입은 셈이다. 더 큰 문제는 TSMC의 신뢰도에 타격이 불가피하다는 점이다. 주문생산을 하는 제조 업계에서는 납품일 맞추는 것이 생명이기 때문이다. TSMC는 지난해 8월에도 ‘워너크라이’ 랜섬웨어 감염으로 생산라인 3곳의 가동을 중단하고 납품에 차질을 빚은 적이 있다. 불과 6개월 사이에 생산에 큰 영향을 주는 사고가 두 건이나 터진 것이다.
삼성전자는 TSMC의 사고로 반사이익을 볼 것으로 예상된다. 이 부회장도 이날 홍 원내대표와 만나 비메모리 반도체 부문 강화 의지를 나타냈다. 실제 삼성전자는 최첨단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를 TSMC보다 먼저 도입하며 바짝 추격하고 있다. 퀄컴·IBM 등 거대 고객사를 확보한 데 이어 엔비디아와도 협의를 진행 중이다. 반도체 업계의 한 관계자는 “글로벌 시장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팹리스 업체와 기술력을 보유한 파운드리 업체가 정해져 있는 만큼 TSMC의 고객사가 등을 돌리고 삼성전자를 택하는 상황도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