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시각] 경찰 인사에 대한 단상

성행경 사회부 차장




충무공 이순신은 1576년 치러진 식년무과에 급제해 공직에 들어섰다. 당시 서른두 살이었다. 스물한 살에 결혼한 뒤 본격적으로 무과시험을 준비했으니 요즘으로 치면 취업준비생 생활을 10년 넘게 한 셈이다. 지금은 구국의 영웅으로 추앙받지만 충무공의 공직생활은 화려함과 거리가 멀었다. 훈련원 봉사·참군과 사복시 주부로 잠시 한양 생활을 했으나 대부분 충청도와 전라도·함경도 등 변방을 전전했다.

충무공의 하급 관리 시절을 장황하게 늘어놓은 것은 최근 마무리된 경찰 인사를 지켜보면서 공직자의 길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돼서다. 어느 조직이나 인사철이 되면 뒤숭숭하기 마련이지만 경찰은 유독 심하다. 이번에도 승진에서 누락된 간부 2명이 공개적으로 인사제도를 비판해 파문이 일었다. 열심히 일했고 나름 성과도 냈는데 자신들이 승진하지 못한 것은 공정하지 못한 인사제도 탓이라고 했다.


이들의 공개 항명이 아니더라도 현재의 경찰 조직구조가 너무 기형적이고 인사 시스템이 낡았다는 것은 오래전부터 지적돼왔다. 고위직은 적고 하위직은 많은 압정형 조직구조가 과도한 승진경쟁의 폐해를 낳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수십 년째 방치한 결과 조직의 활력이 크게 떨어졌다. 9%에 불과한 중간직을 다른 정부 부처 수준인 30% 안팎까지 늘리고 근속연한과 계급정년제를 유연하게 운영해야 한다는 방안도 제시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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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와 제도 탓만 할 것도 아니다. 경찰 스스로도 공직자로의 자세부터 여며야 한다. 인사 항명은 아무리 선의로 해석하더라도 승진에서 누락된 사람의 울분과 푸념으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다. 경무관이나 총경이면 조직에서 0.5% 이내에 드는 고위직이다. 올라갈 만큼 올라간 셈이다. 순경으로 입직한 경찰들은 쉽게 닿을 수 없는 위치다. 아무리 승진에 목을 맬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하더라도 공복(公僕)으로의 역할을 잊어서는 안 된다.

충무공은 미관말직을 전전하면서도 출세를 위해 윗선에 줄을 대고 좋은 보직을 탐하지 않았다. 유성룡의 천거로 마흔일곱에 무려 일곱 계단을 건너뛰어 정읍현감에서 전라도 좌수사로 임명된 것은 분명 상궤를 뛰어넘는 급격한 수직상승이었으나 결국 그 인사가 왕조의 운명을 좌우했다. 시류에 영합하지 않고 혹독한 수련과 결벽에 가까운 자기관리로 실력을 쌓았기에 구국의 대임을 수행할 수 있었다. 지위고하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선공후사(先公後私)는 공직자의 제1 덕목이다.
/saint@sedaily.com

성행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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