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유치원총연합회(한유총)가 ‘유치원 3법’ 통과를 막고자 특정 국회의원 후원을 알선해 정치자금법을 위반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한유총이 20억원 가까운 특별회비를 모아 유치원 3법 반대 도심집회 등을 벌이고 이사장 등 지도부가 공금을 유용·횡령하는 등 각종 불법 행위가 확인됐다.
지난달 12일부터 28일까지 한유총을 실태조사한 서울시교육청은 이런 내용을 담은 중간결과를 31일 내놨다. 교육청에 따르면 한유총 비상대책위원을 비롯해 일부 회원들이 작년 11월 이른바 ‘유치원 3법’을 저지하기 위해 회원들에게 국회의원 후원을 독려했다. 그들은 회원 3,000여명이 있는 카카오톡 단체대화방 일명 ‘3천톡’에 국회의원 몇 명의 후원계좌를 전하며 ‘정치자금법상 한도를 넘기지 않는 범위 내에서 10만원가량을 후원하라’고 했다. 이에 일부가 실제 후원금을 보냈고 이를 안 국회의원 측은 돈을 돌려줬다.
교육청 관계자는 “회원 명의로 정치자금을 후원했어도 법인이 독려해 후원한 것이라면 법인자금으로 후원했다고 볼 여지가 있다는 대법원 판례가 있다”고 설명했다. 정치자금법에 따르면 법인의 정치자금 기부와 ‘업무·고용, 그 밖의 관계를 이용해 부당하게 타인의 의사를 억압하는 방법으로 기부를 알선하는 행위’는 금지된다. 교육청은 후원금을 받은 국회의원의 명단은 공개하지 않았다.
더불어 한유총 비대위원들이 회원들을 독려해 ‘유치원 3법’ 통과를 주도하거나 유보적인 태도의 국회의원들에게 문자를 보내게 한 것도 드러났다. 그들은 ‘3천톡’에 사립유치원 회계 비리를 폭로한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온건파’로 분류된 박영란 전 서울지회장 휴대전화 번호를 올려 ‘항의문자’ 폭탄을 유도했다. 교육청은 휴대전화 번호를 올린 2명을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할 예정이다.
한편 한유총이 20억원 가까이 특별회비를 조성해 유치원 3법 반대 도심집회 등을 벌인 사실도 드러났다. 특별회비는 지난해 11월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유치원 3법 반대 궐기대회 등 ‘정관에 명시되지 않은 회원의 사적 특수이익을 추구하는 사업’에 쓰였다. 특별회비 규모는 2015년부터 작년까지 18억1,000만원 이상으로 추산된다. 한유총이 회원들에게 회비를 교비회계에서 내도 된다고 안내한 점, 일부 유치원 감사결과 교비회계에서 회비를 지불한 것이 드러난 점 등을 보아 대부분 유치원장이 학부모가 납부한 유치원비로 한유총 회비를 냈을 것으로 교육청은 판단했다.
교육청은 전임 이사장인 최정혜씨와 그 직전 이사장이었던 김득수 씨 등 지도부가 공금을 유용하거나 횡령한 의혹도 있다고 밝혔다. 대표적으로 2016~2017년 한유총이 지역지회장들에게 준 돈을 다시 이사장에게 지급한 정황이 있다. 한유총은 6개 지역지회에 ‘지회육성비’ 명목으로 총 6,900만원을 내려보내면서 당시 김득수 이사장에게 현금으로 3,000만원, 서울과 인천지회장에게는 개인계좌로 각각 1,400만원과 2,500만원을 지급했다. 그런데 지회장들에게 준 돈이 이사장의 요구로 다시 이사장에게 돌아간 것으로 드러났다. 교육청에 따르면 이들은 돈이 오간 사실을 부인하거나 받은 돈을 한유총을 위해 썼다고 소명했다.
아울러 한유총이 각종 물품을 구매하고 용역계약을 체결하면서 54건, 총 3억5,400여만원에 대해 세금계산서를 발행받지 않은 것도 드러났다. 한유총은 김득수씨 등 역대 이사장 3명에게 판공비 1억3,800만원과 자문료 5,400여만원을 지급하면서 소득세 원천징수를 하지 않았다. 교육청은 김득수씨 등 5명을 공금유용과 횡령 등의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수사 의뢰하고 세금 관련 내용은 관할 세무서에 전하기로 했다.
한유총이 절차를 어기며 정관을 개정하고, 개정 후 교육청의 허가를 받지 않은 것도 확인됐다. 이에 교육청은 현재 등기된 이사들이 ‘미허가정관’에 따라 선임됐기 때문에 법적인 자격이 없는 것으로 봤다. 이덕선 현 이사장 또한 이사들이 정한 대의원들이 뽑은 탓에 대표로서 자격이 없다는 것이 교육청의 판단이다. 뿐만 아니라 한유총은 이사 등기나 지역지회 소재지 변경등기도 하지 않았다. 교육청은 한유총에 미허가정관을 폐기하고 이사장을 다시 뽑으라고 명령할 방침이다. 등기를 소홀히 한 데에 책임을 물어 과태료 부과도 등기소에 요청한다.
교육청은 한유총 일부 지역지회장 등이 벌인 광화문집회 등은 국가공무원법 위반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집단행동을 금지하는 등의 국가공무원법 일부 조항은 사립유치원 교원에게도 적용된다. 아울러 한유총의 어느 지역지회가 광화문집회에 유치원별로 학부모를 포함해 4명을 데려오라고 압박하며 그렇게 하지 못할 경우 부족한 인원당 10만원씩 회비를 더 내기로 하는 등의 정황도 드러났다.
교육청은 한유총의 집단휴원·폐원이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상 금지된 ‘담합행위’로 판단하고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한다는 방침이다. 온라인 유치원 입학관리시스템인 ‘처음학교로’ 불참 또한 담합으로 판단했다.
조사와 관련해 교육청은 “한유총에 이사회·총회 회의록과 회계장부 등의 제출을 요구했으나 거부하거나 늦게 내 조사에 어려움과 한계가 있었다”고 밝혔다. 한유총 설립허가 취소에 대해선 “수사결과와 시정조치 이행 여부를 보고 판단하겠다”고 답했다. 교육청이 설립허가를 취소하면 한유총은 해산된다.
이에 대해 한유총은 입장 자료를 내고 “국회의원 후원을 독려한 사실이 없다”고 주장하는 등 교육청의 조사 결과를 조목조목 반박하며 유감을 표했다. 다만 한유총은 “조사에 따른 처분이 내려지면 전향적인 자세로 수용하겠다”고 언급했다.
/박원희 인턴기자 whatamove@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