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3월1일로 예고된 미중 무역전쟁의 90일 휴전 시한을 한 달 남기고 마주앉은 미국과 중국의 장관급 협상단이 30일(현지시간) 첫날 협상에서 아무런 접점도 찾지 못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무역 담판에 대한 회의론이 짙어지기 시작했다. 무역분쟁 타결이 다급한 중국은 유화 제스처를 잇달아 내보이고 있지만 정작 미국이 강력히 요구하는 구조적 개혁 요구에는 응하지 않아 양국이 접점을 찾기 어려운 형국이다. 미국은 협상 개시일에 맞춰 중국의 ‘기술 도둑질’ 혐의를 추가로 기소하며 중국에 대한 압박을 이어가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무역전쟁을 해소하기 위해 30~31일 워싱턴DC에서 열리는 미중 고위급 협상 첫날 일정은 양국 간 이견만 확인한 채 마무리됐다.
30일 백악관에서 시작된 장관급 협상은 미국의 요구에 중국이 맞서는 형태로 진행됐다. 회의는 아침부터 저녁 만찬까지 장시간 이어졌다.
블룸버그는 미중 무역협상에 관여하는 익명의 소식통들을 인용해 미중 양국이 일부 의제에서는 진전을 보이고 있지만 여전히 핵심쟁점에 대한 의견 차는 좁히지 못하고 있다며 “이번 장관급 회담에서 무역협상이 타결될 가능성은 낮다”고 전했다.
미국은 협상 개시에 앞서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이 △지식재산권 침해 △중국에 진출하는 미국 기업들에 대한 중국의 기술이전 강요 △이를 금지할 이행강제 장치 마련 등을 3대 핵심의제로 밝히고 협상에서도 이들 의제를 중심으로 강공을 이어간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은 이 밖에도 특정 산업에 대한 보조금 철폐, 중국의 막대한 무역흑자를 초래하는 양국의 무역 불균형, 중국 상품의 가격 경쟁력을 좌우하는 위안화 약세 문제와 환율조작 논란을 의제로 포함했다.
이에 대해 류허 국무원 부총리가 이끄는 중국 협상단은 미국 농산물 및 에너지 수입 대폭 확대, 지재권 침해와 기술이전 강요 해소 등을 협상 카드로 제시한 상태다. 상대적으로 불리한 자국의 입장을 감안한 유화적 제스처도 연일 쏟아내고 있다. 지난 30일 중국 인민은행은 다음달 200억위안(약 3조3,000억원)의 중앙은행채권을 홍콩시장에서 발행한다고 공개했다. 유동성을 흡수해 미국에서 반발하는 위안화 약세를 막겠다는 조치다.
하지만 중국은 사회주의 중국 경제의 구조적 변화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며 화웨이 등에서 문제가 된 기술 도둑질도 아예 없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이 핵심의제에서 ‘버티기’에 돌입하자 미국 측은 강공으로 압박에 나섰다. 미 법무부는 이날 애플의 중국인 직원을 애플 자율주행차 기밀을 훔친 혐의로 캘리포니아 북부연방법원에 기소했다. 애플에서 중국인 직원이 기술절도 혐의로 기소된 것은 지난 반년 사이 두 번째다. 전날에는 멍완저우 화웨이 최고재무책임자(CFO)를 정식으로 기소하기도 했다. 중국이 불법을 자행한 혐의를 잇달아 공개하면서 협상의 압박 카드로 쓰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이런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31일 조만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나 최종 무역협상을 마무리 짓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중국이 관세를 올리기를 원하지 않는다. 장관급 협상이 좋은 분위기 속에 잘 진행되고 있다”며 “시 주석과 가까운 시일 내 만나 협상을 마무리 짓겠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 같은 발언은 중국 협상단이 2월 중국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시 주석의 정상회담을 제안한 사실이 알려진 가운데 나왔다.
한편 미중 간 협상이 쉽게 실마리를 찾지 못하는 가운데 무역전쟁에 따른 중국의 경기둔화가 점차 가시화하고 있다. 31일 중국 국가통계국이 발표한 1월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는 49.5를 기록해 2개월 연속 제조경기가 위축 국면임을 나타냈다. 중국의 거대 전자상거래 업체 알리바바그룹의 지난해 4·4분기 매출은 전년동기 대비 41% 늘었지만 증가율은 3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에 그쳤다. 중국의 경제둔화와 미중 무역전쟁이 중국 소비자의 지출에 영향을 주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베이징=최수문특파원 chsm@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