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가 다양한 영역에서 심각한 갈등을 겪고 있지만 정작 자신이 갈등의 원인이거나 가해자라고 인식하는 비율은 저조했다. 이러한 문제점은 사회적 갈등 해소를 막는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또 연령별·성별로도 갈등요소를 바라보는 시각이 상이해 서로에 대한 불신을 키우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서울경제신문이 진행한 ‘한국사회의 갈등·혐오 문제에 대한 인식조사’ 결과에 따르면 ‘일생생활이나 인터넷 등을 통해 혐오표현이나 차별을 경험했다’는 답변이 75.4%에 달했다. 반면 ‘인터넷이나 일생생활에서 혐오표현이나 차별적 행위를 한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75.7%가 ‘없다’고 답했다. 대다수가 세대 간, 성별, 이념이 다른 집단의 피해자라는 의미다. 이강원 한국사회갈등해소센터 소장은 “자신이 당한 피해에는 민감하고 즉각적으로 반응하면서도 가해행위에 대해서는 관대한 이중성으로 해석된다”며 “자신이 차별행위에 대한 가해자이면서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문제가 반복되고 있다는 증거”라고 분석했다.
사회적 갈등은 연령별로도 뚜렷한 차이를 드러냈다. 10대(36.8%)와 20대(39.0%), 30대(23.5%)는 어느 정도 자신도 가해자라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었지만 40대(11.3%), 50대(9.1%), 60대(16.7%)에서 가해자라고 인정하는 비율이 크게 떨어져 나이가 들수록 사회적 갈등을 특정 세대만의 문제로 치부하는 경향이 강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한국사회의 심각한 갈등 요소에 대해서도 연령대별로 인식 차이를 보였다. 10~30대는 ‘젠더’ 문제를 가장 심각한 갈등요소로 꼽은 반면 40대는 ‘빈부’ 문제를, 50~60대는 ‘이념’ 문제를 가장 심각한 갈등요소로 꼽았다. 성별로도 인식 차이를 드러냈다. 우리 사회의 가장 심각한 갈등요소에 대해 여성은 빈부(21.2%), 젠더(20.7%), 이념(14.2%) 순으로 꼽은 반면 남성은 이념(20.3%), 젠더(18.6%), 계층(15.0%)을 가장 큰 문제점으로 봤다.
이 소장은 “자신의 상황과 처지에 따라 갈등의 체감도가 달라지는 효과가 있다”며 “우리 사회의 전통적인 갈등 중 하나인 세대와 젠더 갈등이 급속도로 확산하고 있는 것도 사회 구조적인 문제인 젊은 층과 중장년층의 고용문제뿐만 아니라 젊은 세대와 기성세대의 삶에 대한 인식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갈등의 심각성을 달리 보는 연령·세대 간 인식 차가 해소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다만 ‘혐오표현을 규제하기 위해서는 차별금지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는 78.3%가 ‘제정해야 한다’고 답해 연령별·성별로는 이견을 보이지 않았다. ‘혐오표현과 차별 현상을 해소하기 위해 가장 시급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는 ‘민주·인권교육 강화’가 42.9%로 가장 높았고 그 다음으로 법·제도를 통한 규제·처벌 강화(26.3%), 정치권 및 언론·종교계의 각성(22.8%), 범정부적 캠페인(6.4%) 등의 순으로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