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생활

[고향가는길-차례주 올리기] 조상님께 '청주'보단 '약주' 올리세요

일제 강점기 가양주 금지로 인해

일본식 청주, 전통 제주 자리 꿰차

술 빚는 원료·처리방식서 차이 커

경남 탁주·충청 한산 소곡주 등

지역마다 '차례주'도 다양해




‘술과 음식으로 공손히 잔을 올리니 흠향(歆饗·혼백이 와서 제사에 바친 음식을 받아서 먹는 것)하시옵소서’

제례 시 올리는 축문에는 이 같은 의미의 글귀 ‘근이청작 서수공신 전헌 상향(謹以淸酌 庶羞恭伸 奠獻 尙饗)’을 쓰는 것이 일반적이다. 가운데 ‘청작’이라는 문구에서 짐작이 가듯 제례에 올리는 술은 맑은 술이어야 한다. 설이나 추석 등 명절에 조상님께 올리는 제사인 차례를 올릴 때도 같은 기준을 따른다. 과거 우리 조상들은 명절 차례를 지낼 때 전통 제법으로 정성 들여 직접 빚은 맑은 술을 바쳤다지만 바쁜 현대 사회에 술을 직접 빚기란 쉽지 않은 법. 마음을 담아 좋은 술을 고르는 것으로 대신하되 예법에는 어긋남이 없도록 신경 쓰는 것이 중요하다.






◇‘맑은 술’ 올리라는데... ‘청주’보다는 ‘약주’를=맑은 술을 차례상에 올리는 이유는 간단하다. 맑은 술이 탁한 술보다 귀하게 여겨졌기 때문이다. 우리 조상들은 쌀이나 조, 밀 등 주로 곡식을 이용해 술을 빚었는데, 곡식을 발효시켜 술을 빚을 경우 술이 다 발효되면 아래에 건더기(찌꺼기)가 가라앉고 위에 맑은 술이 뜨게 된다. 술을 거르는 용수(싸리나 대오리로 만든 둥글고 긴 통)나 고운 천으로 한 번 걸러낸 맑고 깨끗한 청주를 차례상에 올렸다.

하지만 차례상에 올리는 술로 맑은 술이라는 뜻의 ‘청주(淸酒)’를 무작정 고르다가는 자칫 일본식 술을 올릴 수도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원래 청주는 ‘맑은 술’이라는 뜻의 한국 전통주 이름이었지만 일제 강점기 시행된 주세정책으로 인해 이름을 뺏기게 됐다. 현재 ‘청주’라는 이름은 일본식 누룩인 입국 방식으로 빚은 술에만 쓸 수 있다. 실제로 과거 우리 조상들은 차례나 제례에 쓰이는 제주(祭酒)를 각 가정에서 직접 담가 조상님께 올리곤 했는데 일제 강점기 집에서 술을 빚는 ‘가양주’를 금지하고 1960년대 양곡보호정책으로 우리 술 제조에 쌀을 사용하지 못하게 되면서 일본식 청주가 전통 제주의 자리를 대신하게 된 적도 있다. 대표적인 예가 ‘정종(正宗)’이다. ‘마사무네’라고 읽는 정종은 일본의 대표 청주 브랜드로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이 부산에 일본식 청주공장을 세우고 여기서 만든 일본식 청주를 유통하면서 국내에서 팔리기 시작했다. 아직도 청주를 ‘정종’이라고 부르는 어르신이 있는데 일제 시대의 잔재다.


우리의 전통 청주를 고르려면 ‘약주(藥酒)’라고 이름이 붙은 술을 고르는 게 오히려 무난하다. 우리 전통 청주와 일본식 청주는 누룩과 술의 원료, 처리 방식에 있어 모두 차이가 있고 맛도 다르다. 예컨대 우리 술을 빚을 때 쓰는 누룩은 밀을 껍질째 가루 내어 메주처럼 덩어리지게 만들어 공기 중의 미생물을 번식시켜 만들기에 다양한 곰팡이와 유산균이 자란다. 때문에 전통 누룩으로 빚은 우리 술에는 복잡하고 다양한 신맛이 난다. 반면 일본식 청주는 쌀알을 쪄서 흩어 놓고 코지라는 쌀누룩을 사용해 신맛보다는 단순하고 깔끔한 맛을 낸다. 술 빚는 원료에서도 우리 술은 찹쌀, 멥쌀, 보리, 밀, 수수, 녹두 등 다양한 곡식으로 만드는데 일본 청주는 쌀만을 원료로 하고 쌀을 깎는 정도에 따라 다양성을 부여한다.

관련기사





◇수도권은 약주, 경남은 탁주… 차례주 지역마다 달라=명절 아침 차례상에 올린 술을 나눠 먹는 풍습은 음복(飮福)이라고 하는데 이는 ‘복(福)을 마신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조상님의 음덕을 입어 자손들이 잘 살게 해달라는 의미다. 음복은 고려 말 이래 행해진 것으로 전해지는데 오늘 날의 방식을 보면 차례를 올린 후 그 자리에서 웃어른이 술을 한 모금 마시고 음식을 먹는 것으로 음복을 한 후 가족들이 다 같이 음복을 한다. 이 풍습은 한 해 동안 모든 가족들의 건강과 행운을 기원하는 일종의 축제다.

조상님께 차례를 올리고 음복을 하는 행위는 모두 같지만 차례주로 사용하는 술에는 지역별로 조금씩 차이가 있다. 우선 서울·수도권은 차례상에 올리는 술로 곡물 원료를 발효시켜 빚은 맑은 술인 ‘약주’로 제사를 지낸다. 우리 전통 약주의 대표적인 제품으로는 국순당의 ‘예담’ 차례주를 꼽을 수 있다. 주정을 섞지 않고 100% 순수 발효로 만들어 음복하기 좋고, 차례상에 올리는 기름진 전이나 볶음 요리 등과 곁들여도 궁합이 잘 맞는다.

경북 지방은 차례상에 주로 청주를 올린다. 여기서 말하는 청주란 주정이 들어간 일본식 청주가 아닌 전통 청주를 의미한다. 경북 지방은 전통 기법으로 빚은 청주를 쓴다. 대표적인 예가 경주시 교동 최부자집에서 대대로 빚어온 전통주인 ‘경주 교동법주’가 있다. 토종 찹쌀 100%로 빚은 순미주인 경주 법주는 쌀 100%로 만들어 깔끔한 맛이 특징이다. 경북 지방에서 차례상에 올리는 조기·돔베기(상어산적) 등의 어류와 잘 어울린다.

충정 지방에서는 지역의 대표 술인 ‘한산 소곡주’를 차례상에도 자주 올린다. 맛과 향이 뛰어나 한번 맛을 보면 자리에서 일어날 줄 모른다고 해서 ‘앉은뱅이 술’이라고도 한다. 찹쌀을 빚어 100일 동안 익힌 술은 빛깔은 청주처럼 맑다. 무침 요리나 한과 등과 찰떡궁합을 이루는 맛으로 정평이 나 있다. 호남 지방에서는 배를 원료로 한 전주 이강주가 제주로 명성이 높다. 토종 소주에 배와 생강을 넣어 빚은 술은 달콤하고 새콤한 맛이 일품으로 육류와 특히 궁합이 잘 맞다. 또 영남권에서는 새콤하고 걸쭉한 맛이 특징인 탁주(막걸리)를 올리는 집안이 많은데, 떡국이나 나물류와 함께 마시면 좋고 두부 등 자극 없는 음식과도 잘 어울린다. 강원 지방도 특별한 지역 명주는 없지만 산간 지역에서 채취한 상황버섯 등의 약재를 원료로 한 담금주를 올리는 집을 종종 볼 수 있다.




김경미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