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동향

[뒷북경제]곳곳에서 터지는 장기불황 징조

투자 안하고 허리띠 졸라매...돈 안 돌아

부동산 등 자산 가격 하락에 물가까지 제자리

한국은행 금리인하 전망 쏠쏠




2010년대를 마감하는 올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2013년 글로벌 재정위기에 이은 장기 경기침체 징후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기업의 투자가 줄고 개인들이 지갑을 닫고 대외환경이 악화되는 등 곳곳에 악재가 도사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과거 5년 단위로 찾아오던 위기와 이번 위기가 질적으로 다르다는 점입니다. 과거 위기는 주로 외부의 충격이 국내 경제에 영향을 준 것이라면, 이번에는 미중 무역분쟁 등 대외 위기에 자동차, 조선 등 제조업 경쟁력 상실, 반도체 경기둔화, 가계부채와 고령화로 인한 소비 둔화 등 대내외 악재가 동시에 우리 경제를 덮치고 있어 더욱 심각합니다. 여기에 문재인 정부가 추진한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강도 높은 부동산 규제가 더해져 경기하강 속도를 높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장기 경기침체의 징후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주로 성장동력 부족(저조한 기업투자), 부동산 등 자산시장 침체 및 저물가 기조, 장단기 금리차 축소 내지 역전, 돈맥경화 등을 들 수 있습니다.

◇성장동력 부족…저조한 기업 투자=현재와 미래의 경제상황을 보여주는 경기동행·선행지수는 최근 7개월 연속 동반 추락했습니다. 지난 1970년대 초 오일쇼크 이후 처음입니다. 통계청이 지난달 31일 발표한 ‘2018년 12월 산업활동동향’을 보면 지난해 12월 경기선행지수와 동행지수는 각각 98.5와 98.1로 전월 대비 0.2포인트씩 내렸습니다. 선행지수 하락은 지난해 6월 이후 7개월째, 동행지수는 9개월 연속입니다. 이런 추세라면 1971년 7월~1972년 2월(8개월)의 최장 기간 하락을 깨는 것도 시간문제입니다.

지난해 전산업 생산은 전년 대비 1.0% 늘며 2000년 이후 최저폭 늘었습니다. 광공업생산의 증가세 둔화와 건설업 부진이 주된 원인으로 지목됩니다. 지난해 광공업생산은 전년 대비 0.3% 늘어나는 데 그쳤고 건설업은 5.1% 감소했습니다. 광공업생산은 자동차와 금속가공 등이 감소하고 반도체 증가세가 하반기부터 둔화한 영향이 컸습니다.

0115A02 산업활동


투자도 상황은 마찬가지입니다. 반도체 경기가 급격히 꺾이면서 미래의 생산을 가늠할 수 있는 기계류 투자는 전년 대비 7.1%나 급감했습니다. 선박과 항공기를 제외한 설비투자지수도 4.9% 감소했습니다. 얼어붙은 부동산 경기 역시 투자지표에 악영향을 줬습니다. 지난해 건설기성은 건축(-41%)과 토목(-7.9%)의 공사실적이 급감하며 전년 대비 5.1% 줄었습니다.

유일하게 버팀목이 되어 준 소비는 다소 증가했지만 자동차 개별소비세 인하라는 인위적 정책 효과에 덕이 큽니다.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의미이지요. 그마저도 증가 폭은 둔화하고 있습니다. 강인수 숙명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생산·투자가 부진한 데 반해 소비가 좋은 것은 생산성 향상→근로자 소득 증가 등의 여파라기보다 최저임금 인상과 각종 이전소득 증대 등 인위적인 정부 정책의 영향으로 보인다”고 평가했습니다.

◇돈맥경화=돈은 경제의 혈맥입니다. 가계는 소득으로 저축을 하고 기업은 가계가 저축한 돈으로 투자를 함으로써 고용을 창출하고 이는 다시 가계의 소득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가 가장 바람직한 경제의 모습입니다. 하지만 최근 이런 순환구조가 깨지고 있습니다.

한국은행 통계를 보면, 지난해 3분기 기업의 시설자금 대출은 전년대비 9.3% 증가했습니다. 얼핏 나쁘지 않는 숫자인 것 같지만 시설자금 대출 증가율이 한 자릿 수로 떨어진 것은 지난 2010년 4분기 이후 처음입니다.


더 심각한 것은 우리 경제의 핵심인 제조업 분야 대출이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는 점입니다. 지난해 3분기 제조업 분야 시설자금 대출금 증가율은 4.1%에 그쳤습니다. 지난 2016년 2분기 한자릿 수 증가율로 떨어진 이후 줄곧 내리막길입니다. 그 만큼 기업들이 시설투자를 꺼리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돈이 얼마나 활발히 돌고 도는지를 보여주는 통화승수, 통화유통속도 등도 저조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일시적으로 돈을 은행에 맡겨두는 요구불예금 증가율이 급격히 떨어지는 반면 저축성 예금 증가율은 높은 수준을 유지하는 것도 좋지 않은 징조입니다. 돈을 경제활동에 사용하기보다는 은행에 맡겨두고 노후 등 미래에 대비하려는 경향이 커지고 있다는 뜻이고 이는 결국 경제주체들이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다는 얘기이기 때문입니다. 지난 2016년을 보면 예금은행의 총 예금 증가율은 대략 7~8%, 요구불예금 증가율은 10~20%, 저축성 예금 증가율은 5%대였습니다. 요구불예금 증가율이 평균을 웃돌고 저축성 예금 증가율은 평균을 밑돌았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지난해부터는 이것이 역전됐습니다. 지난해 1~3분기 총 예금 증가율은 5~6%대, 요구불 예금 증가율은 2~6%, 저축성 예금 증가율은 6~7%였습니다. 특히 지난해 3분기에는 요구불예금 증가율이 2%에 그쳤습니다. 은행들이 특판 예금을 열심히 팔았다고는 해도 좀 우려스런 수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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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혀진 장단기 금리격차 = 채권금리는 현재와 미래의 경기에 대한 경제주체들의 판단이 응축돼 있습니다. 최근 미국 연준이 금리인상을 사실상 중단하겠다고 선언하면서 장단기 금리격차는 다시 벌어졌지만 미국에서는 얼마 전 까지만 해도 장단기 금리격차 역전 현상까지 나타났습니다. 통상 장기 금리는 단기금리보다 높아야 하는데, 이 격차가 좁혀지거나 역전된다면 이는 앞으로 경기가 안 좋아질 것이라고 다수의 경제주체들이 판단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이런 현상은 우리나라에서도 마찬가지인데요

지난해 12월 국고채 3년물은 1.9%대, 10년물은 2.1%로 장단기 금리차는 18~19bp에 그쳤습니다. 2016년 10월 4일(17.9bp) 이후 2년2개월 만에 가장 작은 수준입니다. 이 금리 차가 20bp 이내로 좁혀진 것도 2016년 10월 5일(19.4bp) 이후 처음입니다. 장단기 금리 차 축소나 금리역전은 경기 후퇴의 ‘전조’로도 여겨집니다. 최근 연준의 인상 기조 중단에 이어 한은도 금리를 동결하자 장단기 금리차는 다시금 다소 벌어졌지만 여전히 역사적으로 보면 그 격차는 크지 않습니다.

◇부동산 등 자산가격 하락=최근 부동산 가격 하락은 심상치 않습니다. 문재인 정부의 강도 높은 부동산 규제와 대출 규제 탓이지만, 우리뿐 아니라 전세계적으로도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는 모습은 장기 침체에 대한 우려를 더합니다. 지난 2일 부동산114에 따르면 그 주 서울 아파트값은 0.05% 하락했습니다. 작년 11월 9일 주간 이후 12주 동안 내림세입니다. 서울 재건축 시장도 0.18% 하락해 14주 연속 내림세를 이어갔다.

서울 아파트 매매 신고 건도 5년 6개월 만에 가장 적은 수준으로 줄었습니다. 이달 1일 기준 지난달 서울 아파트의 거래 신고 건은 1,857건으로 지난해 1월 1만198건을 한참 밑돌았습니다. 지난 2013년 7월 2,118건 이후 최저치입니다.



특히 서울은 최근 표준단독주택 공시가격 발표 이후 관망세가 더 짙어졌습니다. △강남(-0.18%) △양천(-0.12%) △금천(-0.08%) △마포(-0.08%) △송파(-0.07%) 등이 줄줄이 하락했습니다. 공시가격 현실화에 따른 보유세 부담으로 수도권 아파트 시장의 투자 심리가 더 위축됐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입니다.

부동산 가격 하락은 소비 둔화 등 내수침체를 유발할 수 있습니다. 집값 하락으로 소득이 줄었다고 느낀 집주인들이 소비를 줄이거나 대출금 상환에 부담을 느껴 허리띠를 졸라맬 수도 있습니다. 급매물이 집값을 추가 하락시키는 악순환이 얼어나가 역전세난까지 일어나 빚 상환 부담이 커진다면 그렇잖아도 부진한 내수가 고꾸라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부동산 가격은 너무 올라도 너무 떨어져도 경제에 안 좋은 것 같습니다.

◇한은, 금리인하 전망 쏠쏠=한국은행은 지난해 11월 기준금리를 한차례 인상했습니다. 당시 경기 부진 우려가 높았는데도 말이지요. 인상 명분은 금융불안(가계부채 누증), 미국과의 금리 역전폭 확대, 정책 수단 확보 등이었습니다.

최근 지표만 보면 이제 금리를 내려야 할 때라는 지적까지 나옵니다. 투자와 소비가 고꾸라지고 수출까지 최근 2개월 연속 전년대비 줄어든데다 물가상승률은 최근 0%대로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한은이 당장 금리를 내릴 것으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여전히 미국과의 금리 역전 폭이 0.75%에 달해 자본유출 우려가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그보다 더 큰 이유는 금리를 올린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지난해 11월 금리를 올렸는데 몇 개월 만에 금리를 내리면 ‘오락가락 한은’, ‘갈 짓자 한은’ 등의 비판을 받을 수 있지요. 실리보다 체면을 중시하는 한은이 이를 감내할 용기를 내리라고 기대하기는 힘듭니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금리를 내릴 때가 다가오고 있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립니다. 권영선 노무라 이코노미스트는 지난 1일 발간한 보고서에서 한국의 올해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 전망치를 1.7%에서 1.0%로 낮추면서 한은이 올해 안에 금리를 인하할 가능성이 커졌다고 진단했습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ㆍ연준)의 올해 금리 인상 예상 횟수가 두 번에서 한 번으로 줄어든 것도 이런 전망을 뒷받침한다고 했습니다.다만 그는 기본적으로 한은이 올해 금리를 동결할 것으로 본다면서 내년에 금리를 1.5%로 25bp 인하할 것이라고 예견했습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표만 보면 금리를 내려야 할 때”라고 했습니다. 성 교수는 “하지만 한은은 당분간 금리를 동결하면서 관망 모드를 이어갈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습니다.


김능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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