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대법 "불법수사 피해는 시효 지나도 국가배상 책임"

"재심에서 무죄 받을 때까지 소송 제기 어려워"

"국가의 '소멸시효 완성' 주장은 잘못"

대법원은 수사과정에서 불법 구금과 고문을 당한 피해자는 재심을 통해 무죄를 선고 받은 이후에야 배상 청구가 가능하기 때문에, 국가가 ‘소멸시효 완성’을 주장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에 대법원은 7일 정 모씨와 가족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서울경제DB대법원은 수사과정에서 불법 구금과 고문을 당한 피해자는 재심을 통해 무죄를 선고 받은 이후에야 배상 청구가 가능하기 때문에, 국가가 ‘소멸시효 완성’을 주장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에 대법원은 7일 정 모씨와 가족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서울경제DB



수사과정에서 불법구금과 고문을 당하고 유죄 판결까지 받은 피해자가 국가를 상대로 배상 청구 소송을 낸 경우, 국가가 ‘소멸시효가 끝났다’는 주장을 할 수 없다고 대법원은 판결했다. ‘소멸시효 완성’이란 행위가 발생한 뒤 일정 기간이 지나면 배상 청구권이 소멸하는 걸 말한다. 대법원은 피해자가 재심으로 무죄를 확정받기 전까지는 배상을 청구하기가 어렵고, 그 원인을 국가가 제공했기 때문에 소멸시효가 끝났다고 국가가 주장하는 건 신의성실 원칙(서로 신뢰에 어긋나지 않도록 행동해야 한다는 민법의 대원칙)상 허용될 수 없다고 밝혔다.


7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 받은 정 모씨와 가족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깨고 원고 승소 취지로 사건을 서울고법에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불법구금이나 고문을 당하고 유죄 확정판결까지 받은 경우에는 재심절차에서 무죄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 국가배상 책임을 청구할 것을 기대하기 어렵다”며 “재심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를 할 것을 기대할 수 없는 장애 사유가 있었다고 봐야 한다”고 봤다. 이어 “국가의 소멸시효 완성 항변은 신의성실 원칙에 반한 권리남용으로, 허용될 수 없다”며 “정씨가 권리행사를 할 수 없는 장애가 없었다며 국가의 주장을 받아들인 원심 판단에는 관련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있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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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씨는 1981년 버스에서 “이북은 하나라도 공평히 나눠 먹기 때문에 빵 걱정은 없다”고 말했다는 이유로 구속기소 돼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았다. 정씨는 1982년 자신을 수사한 경찰들을 불법감금과 고문 혐의로 고소했지만, 검찰은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혐의없음’ 결론을 내고 그들을 기소하지 않았다. 20여 년이 지난 뒤 정씨는 자신의 유죄판결에 재심을 청구했다. 이를 두고 법원은 2014년 5월 “경찰이 불법감금·고문한 사실이 인정되고 정씨의 발언만으로는 국가의 존립·안전을 위태롭게 한다고 보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이에 정씨 등은 경찰의 불법수사와 법원의 위법한 재판으로 정신적 피해를 봤다며 국가를 상대로 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1·2심은 “국가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은 불법행위일로부터 5년 동안 행사하지 않으면 시효로 소멸하는데, 경찰이 정씨를 불법체포한 날로부터 5년이 지난 후에 소송을 제기해 청구권이 소멸했다”며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이날 대법원은 “국가는 소멸시효 완성을 주장할 수 없다”며 2심 재판을 다시 하라고 결정했다. /박원희 인턴기자 whatamove@sedaily.com

박원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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