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정치·사회

[최수문특파원의 차이나페이지] <3> 자연의 역습?…무분별한 개발에 ‘사막화'되는 베이징

중국 베이징 융딩허에 놓인 ‘마르코 폴로의 다리(노구교)’ 전경. 지난 2월 2일 모습으로 흐린 날씨에 을씨년스럽다. 융딩허는 흐르는 강물 없이 맨바닥이 드러나 있다. /최수문기자중국 베이징 융딩허에 놓인 ‘마르코 폴로의 다리(노구교)’ 전경. 지난 2월 2일 모습으로 흐린 날씨에 을씨년스럽다. 융딩허는 흐르는 강물 없이 맨바닥이 드러나 있다. /최수문기자



“야! 눈이 온다.” 중국 베이징 왕징에 거주 중인 한국 주재원 A씨는 지난 6일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에 잠을 깼다. 중국도 연휴라서 늦잠을 자려고 했지만 ‘눈이 온다’는 소리에 저절로 눈이 뜨였다고 한다. A씨가 일어나 창밖을 바라보니 진짜 눈이었다. 한국에서 흔한 눈이지만 베이징에서는 이를 보기 쉽지 않다. 작년에는 3월에야 겨울 첫눈을 만났던 기억이 있다.

다만 이날 눈은 곧 그쳤고 아파트 단지에는 흔적도 남지 않았다. 다음날 중국 언론은 전날 온 눈에 대해 중국 기상 당국이 이렇게 정리를 했다고 전했다. “베이징 관내 20개 관측지점 중 (기준선인) 10개 지점 이상에서 눈이 관측돼 올 겨울 첫눈으로 인정된다.” 얼마나 왔는지는 애써 집계하지도 않았다. 강설량이 아주 미미했다는 의미다. 어쨌든 이날 눈 때문에 베이징은 65일 만에 ‘첫 강수’를 기록했다.


A씨와 가족들이 몇 년째 경험하는 것처럼 베이징의 건조함은 악명이 높다. 기본적으로는 비가 잘 오지 않고 그나마 있는 습기도 몽골 사막 쪽에서 불어온 바람에 황해 쪽으로 쓸려가 버린다. 베이징에 처음 오는 사람들은 누구나 한 번쯤 심한 감기에 걸린 기억이 있다고 한다. A씨도 “베이징에 온 첫해 아이들과 가족들이 겨울 내내 감기와 비염을 달고 살았다”고 전했다.

베이징의 건조함은 중국 기상국이 집계한 공식 통계가 말해준다. 지난 한해 베이징의 총 강수량은 575.5㎜였다. 이는 서울의 연평균 강수량(1,450㎜)의 3분의 1에 불과한 수치다. 설상가상으로 강수량은 매년 줄고 있다. 지난 2016년에는 강수량이 620.6㎜였다. 이것이 2017년 540.7㎜까지 떨어졌다.

통계상으로는 2018년이 다소 늘어난 것으로 해석되지만 이에는 함정이 숨어있다. 지난해 7월 16~18일 호우와 7월 24일 태풍이 각각 집중됐는데 이때 나흘 동안 200㎜ 정도가 한꺼번에 내렸다. 갑자기 쏟아진 비가 땅에 흡수되지 못하고 그냥 바다로 쓸려간 당시 경우를 빼면 오히려 작년 강수량은 전년보다 더 적었다고도 볼 수 있다.

가끔 폭우라도 오는 여름에 비하면 특히 겨울의 건조함은 충격적이다. 작년 겨울 베이징에 첫눈이 3월17일에 왔는데 당시 첫 눈이 오기 전까지 무려 145일 동안 비나 눈이 한 방울도 내리지 않았다고 한다. 이는 베이징 역사상 최장기간 ‘무(無)강수’ 기록이다. 즉 올해 2월6일에 내린 눈 같지 않은 ‘첫눈’은 작년에 비한다면 상당히 빠른 셈이다.

또 베이징의 겨울 강수량(또는 강설량)은 매년 빠르게 감소하고 있다. 베이징일보에 따르면 20세기 후반기에 들어 베이징에서 눈이 오는 날은 10년 만에 하루씩 줄어들고 있다. 즉 1960년대 16.5일이었던 겨울 강설일은 2017년 전후해서 10.1일로 줄어들었다. 50여년 만에 겨울철 강수량이 3분의2 이하로 떨어졌다는 말이다. 덧붙여 지난해인 2017~2018년 겨울 베이징의 공식 강수량은 0.2㎜다. 이는 1981년 이래 최저치였는데 올해는 이 기록도 깨질 것으로 중국 언론들은 보고 있다.

베이징 왕징 지구에서 도로 중앙분리대를 위한 공지에 가로수가 심어져 있다. 오랜 가뭄에 땅은 거의 ‘사막’처럼 변했다. 2월 8일의 모습이다.  습기 증발을 막기 위해 덮개를 씌웠지만 효과가 없다. /최수문기자베이징 왕징 지구에서 도로 중앙분리대를 위한 공지에 가로수가 심어져 있다. 오랜 가뭄에 땅은 거의 ‘사막’처럼 변했다. 2월 8일의 모습이다. 습기 증발을 막기 위해 덮개를 씌웠지만 효과가 없다. /최수문기자


강수량의 절대 부족은 베이징의 자연환경에 치명적인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최근 베이징의 토양은 거의 사막 수준이다. 흙에 수분이 거의 없어 바람이라도 조금 불면 먼지가 풀풀 날린다. 그나마 도심은 아스팔트나 큰크리트에 덮여있어 속살을 인식하기 어렵지만 맨땅이 그대로 드러나 있는 교외로 갈수록 먼지는 더 심해진다. 이에 따라 차들이나 건물들이 모두 회색에 가까운 외피를 쓰고 있다. 최근 미세먼지가 많이 줄었다고 하지만 그냥 ‘먼지’는 늘어나고 있는 셈이다.

처음에 베이징을 오는 사람들은 베이징의 자연환경에서 기이함을 느끼게 된다. 서울이나 도쿄, 파리, 런던 등 주요 도시에서 가장 필수적인 것이 큰 강인데 베이징에는 이것이 없다. 원래는 있었는 데 현재 없어졌다고 하는 편이 맞다.


지도상으로는 베이징 시의 외곽으로 2개의 주요 하천이 있다. 시가지를 기준으로 서쪽에 융딩허(永定河·영정하)와 동쪽에 차오바이허(潮白河·조백하)가 바로 그것이다. 원래 별로 크지 않은 강인데 현재는 대부분 말라 있다. 베이징의 식수원을 만든다며 두 하천의 상류에 댐을 쌓았기 때문이다. 바로 융딩허 상류의 관팅저수지와 차오바이허 상류의 미윈저수지다. 베이징 거주민의 숫자가 늘어나고 생활용수 및 공업용수 사용이 증가할 수록 저수지에 물을 모아둘 필요성이 더 커지고 이에 따라 베이징을 따라 흐르는 하천 유역은 더 말라 간다. 결국 인간들의 경제생활이 더 활발해질 수록 도시는 더 건조해지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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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 서쪽 융딩허에는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마르코 폴로의 다리’(정식명칭은 루거우차오·蘆溝橋)가 있다. 이탈리아 출신의 상인 마르코 폴로가 그의 책 ‘동방견문록’에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다리”라고 격찬한 곳이다. 다만 강을 가로지르는 다리임이 분명한데 정작 강 바닥은 말라 있어 석조다리만 애처롭게 보인다.

기상 전문가들은 기본적으로 베이징은 거대 도시가 자리할 위치가 아니라고 말한다. 생태적으로 건조기후대에 속하는 베이징 지역은 용수나 식량 면에서 현재와 같은 2,000만 이상 인구를 부양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지난 1월 17일 베이징 스징산 지역의 아파트 건설현장 모습. 인구증가로 도시가 확장되면서 자연환경에 부담을 주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지난 1월 17일 베이징 스징산 지역의 아파트 건설현장 모습. 인구증가로 도시가 확장되면서 자연환경에 부담을 주고 있다. /블룸버그통신


이에 더해 중국의 개혁개방 이후 주로 동남부에 설치됐던 경제특구가 북상해 베이징 인근으로 확대되는 것도 향후 물 부족을 심화시킬 것으로 보인다. 앞서 후진타오 정부 때 만든 톈진의 빈하이신구에 이어 현 시진핑 정부는 베이징 서남쪽에 서울 면적(605㎦)의 3배가 넘는 최대 2,000㎦ 규모의 국가급 경제특구를 조성하는 중이다. 공업용수 수요가 크게 늘어나게 되는 셈이다. 특구가 자리를 잡아갈 수록 베이징 인근 생태계에 미치는 악영향은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역사적으로 보면 베이징은 자연생태와는 상관없이 정치적 이유에서 중국의 수도가 됐다. 처음 베이징을 수도로 삼은 국가는 여진족이 세운 금나라였고 이어 몽골족이 세운 원나라로 이어진다. 여진족이나 몽골족은 농경민이 아닌 유목민(혹은 반유목민)이고 또 자체 인구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건조한 베이징의 자연도 견딜 수 있었다. 이들은 만주와 몽골, 그리고 중국을 잇는 중심지로 베이징을 수도로 선택했다고 해석됐다.

문제는 한족의 국가인 명나라에서 시작됐다. 명나라는 원래 난징을 수도로 했지만 이후 베이징으로 옮겼다. 원나라 같은 세계제국이 목적이었을 테다. 15세기 초인 당시 수도 이전에 대해서도 한족들은 불만이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조선의 계유정난처럼 조카를 죽이고 황제가 된 명 영락제 주체가 ‘분위기 쇄신’ 차원에서 주장한 ‘새로운 정치 중심지’ 논리에 따라 결국 한족 왕조 처음으로 베이징이 중국의 수도가 됐다. 인구와 경작지가 늘어나면서 베이징 토양이 받은 부담이 커지기 시작했다.

왕조가 무너진 1911년 신해혁명 이후의 수도 건설 구상도 흥미롭다. 북벌로 중국을 재통일한 장제스의 국민당은 난징을 ‘중화민국’ 수도로 정했다. 베이징은 수도의 역할을 감당하기에는 무리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민당을 대만으로 몰아내고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을 세운 공산당은 다시 베이징에 수도를 뒀다. 명·청을 계승한 ‘중화부흥’을 위해서는 베이징이 수도로 적당하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베이징이 필요로 한 물자는 상하이 등 남쪽에서 끌어와야 됐다.

지난 1월 22일 관광객들이 베이징 징산(경산)공원에 올라 아래 자금성을 바라보고 있다. 날씨는 맑지만 자금성 위로 뽀얀 먼지가 덮여 있다. /블룸버그통신지난 1월 22일 관광객들이 베이징 징산(경산)공원에 올라 아래 자금성을 바라보고 있다. 날씨는 맑지만 자금성 위로 뽀얀 먼지가 덮여 있다. /블룸버그통신


당시에도 베이징의 기후가 적합하지 않는 것은 누구에게나 분명했다. 한 중국사 전문가는 “중화인민공화국이 들어서고 1950년대 베이징으로부터의 수도 이전이 강력히 제기됐지만 마오쩌둥 등 중공 지도부의 반대에 밀려 무산됐다”고 전했다. 최근에도 간간이 수도 이전 논의가 제기되고 있는 데 별로 호응을 받지 못하고 있다. 베이징의 한 소식통은 “베이징이 처한 수도로서의 불편함은 누구나 알고 있을 테지만 이것을 공론화할 수 있는 여론 조성 시스템이 없는 상태에서 어떤 동력을 받기는 힘들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최근 중국 정부 관계자들이 자국의 미세먼지 발생이 줄고 있다고 주장하며 한국에 옮겨간 미세먼지에 대한 중국 책임론을 희석하는 것은 베이징과 그 주변이 가진 자연생태 조건의 열악함을 애써 무시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난달 중국 생태환경부 고위관계자는 “서울의 미세먼지는 주로 서울에서 배출됐다. 중국의 미세먼지 발생량은 줄어들고 있어 한국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주장으로 한국인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베이징=최수문특파원 chsm@sedaily.com

최수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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