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거래가 위축세를 보이는 가운데 집값과 전셋값이 동반 하락하면서 전국적으로 전셋값이 계약 시점인 2년 전 아래로 하락한 지역들이 늘고 있다. 지방은 2년 전 전셋값 대비 하락 폭이 점차 증가하고, 서울에서는 강남권 4개 구는 물론 일부 강북지역의 전셋값도 2년 전보다 낮거나 비슷해진 곳이 속출하고 있다.
금융당국은 전셋값 급락 지역을 중심으로 깡통전세에 대한 실태 파악에 나서기로 했다. 세입자 입장에서는 재계약을 앞두고 전세금 인상에 대한 부담은 줄었지만, 2년 만기가 끝난 뒤 전세금을 제때 돌려받지 못하는 역전세난의 우려도 커지며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깡통주택은 매매가격 하락으로 전세와 대출금이 매매 시세보다 높은 주택을, 깡통전세는 이로 인해 전세 재계약을 하거나 집이 경매로 넘어갔을 때 세입자가 전세금을 다 돌려받지 못하는 주택을 의미한다.
◇ 전국 17개 광역시·도중 11곳, 경기도 28개 시중 21곳 역전세난 우려
11일 한국감정원의 월간 주택가격 통계 자료에 따르면 올해 1월말 기준 전국 17개 광역 시·도 중 11개 지역의 전셋값이 2년 전(2017년 1월)보다 떨어졌다.
최근에는 수도권에서도 역전세난 우려가 커지고 있다. 경기도의 전셋값은 2년 전보다 3.6%, 인천은 0.26% 낮은 상태다. 경기도는 정부 규제와 새 아파트 입주 물량 증가 등으로 전체 28개 시 가운데 21곳의 전셋값이 2년 전보다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경기지역의 75%에서 역전세난 우려가 커진 것이다. 안성(-13.47%)·안산(-14.41%), 오산(-10.05%)·평택(-11.08%) 등지의 낙폭은 두 자릿수를 기록했다.
전국 평균 아파트 전셋값이 2년 전보다 2.67% 하락한 가운데 울산광역시의 전셋값이 -13.63%로 가장 많이 하락했다. 조선경기 위축 등으로 전세 수요가 감소한 반면, 경남 일대 새 아파트 입주 물량이 증가하면서 전셋값 하락 폭이 커진 것으로 분석된다. 울산 북구는 현재 전셋값이 2년 전에 비해 20.80% 떨어졌다.
경상남도 역시 2년 전 대비 전셋값이 11.29% 내려 전국에서 두 번째로 하락폭이 컸다. 조선업체가 몰려 있는 거제시는 2년 전 대비 전셋값이 무려 34.98% 하락해 전국 최대 낙폭을 기록했다. 이들 지역은 ‘깡통주택’과 ‘깡통전세’ 문제로 지난해부터 임대차 분쟁이 심각한 상황이다.
또 지난해부터 집값이 약세를 보이고 있는 부산 아파트 전셋값이 2년 전보다 2.36% 하락했다. 세종(-5.47)·강원(-2.62%)·충북(-4.01%)·충남(-7.08%)·경북(-8.10%)·제주(-3.71%) 등에서도 2년 전보다 전셋값이 많이 내렸다.
◇ 서울 강남 이어 강북에서도 전세금 돌려줘야…“전세금반환보증 가입”
서울도 예외는 아니다. 이미 서울 아파트 전셋값은 작년 11월 이후 올해 1월까지 3개월 연속 하락해 시 평균 전셋값이 2년 전 시세 밑으로 떨어지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분석이다. 감정원 조사 기준으로 서울 아파트 전셋값은 아직 2년 전 대비 1.78% 높다. 그러나 역으로 서울 아파트 평균 전셋값이 앞으로 1.78% 하락하면 역전세난이 발생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이미 강남 4구의 전셋값은 2년 전보다 0.82% 하락했다.
서초구의 전셋값이 2년 전 대비 -3.86% 떨어졌고 송파구도 2년 전 시세보다 0.88% 내렸다. 강남구(0.02%)는 사실상 2년 전 가격 수준이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송파구 잠실동 잠실엘스 전용 85.8㎡는 2년 전 1월 말 전세 실거래가가 8억5,000만원이었으나 올해 1월말은 7억8,000만∼8억3,000만원으로 최대 7,000만원 하락했고, 이달 초에는 1억5,000만원 낮은 7억원에 전세 계약이 이뤄졌다. 2년 전세계약이 만기되고 지금 재계약을 한다면 수천만원의 전세보증금을 세입자에게 돌려줘야 하는 것이다.
강남권은 최근 재건축 이주 단지 감소와 송파 헬리오시티 등 대규모 재건축 단지들의 입주 물량이 증가하면서 전셋값 약세를 주도하고 있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작년 10월 말 대비 강남 4구의 전셋값은 1.48% 하락해, 강남 4구 이외 지역(-0.53%)에 비해 낙폭이 약 3배 가까이 높았다. 강북에서도 최근 하락세가 나타나면서 현재 도봉구 전셋값은 2년 전보다 0.40% 낮다. 노원(0.06%)·용산구(0.56%) 등지도 아직 2년 전 이하로 떨어지진 않았지만 역전세난의 사정권이다.
노원구 상계동의 한 중개업소 대표는 “요즘 전세를 빼려면 2년 전 시세보다 최소 1,000만원 이상 낮춰줘야 한다”며 “계약 만기가 지나도록 빠지지 않은 전세가 수두룩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올해 입주물량 증가로 전세시장 약세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역전세난 문제에 대비해야 한다고 말한다.
금융당국은 이에 조만간 올해 가계부채의 주요 리스크 요인 중 하나로 꼽히는 깡통전세와 역전세난에 대한 실태파악에 나설 계획이다. 당국은 깡통전세 문제가 좀 더 심각해질 경우 역전세 대출을 해주거나 경매 유예기간을 연장하는 등의 방안도 내부적으로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부동산114 김은진 리서치센터장은 “정부 규제로 매매가격이 약세를 보이는 가운데 역전세난이 지속되면 집값 하락세가 더욱 가속화될 것”이라며 “깡통주택·깡통전세 등에 따른 대출 부실화 가능성에 유의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우리은행 안명숙 부동산투자자문센터 부장은 “강남은 수개월째 전세가 안빠져 고통받는 세입자가 늘고 있고 강북에서도 역전세난이 나타날 조짐”이라며 “세입자들은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할 경우에 대비해 전세금반환보증 상품에 가입해두는 게 안전하다”고 말했다.
/윤서영 인턴기자 beatriz@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