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지방자치단체의 ‘농수산물도매시장업무조례 시행규칙’은 도매시장에 반입되는 농수산물에서 잔류 농약이 기준치 이상으로 나오면 출하금지와 영업제한 조치를 할 수 있도록 돼 있다. 안전성에 문제가 생기면 퇴출까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상위 법률은 다르다. ‘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안정에 관한 법률’은 안전성 검사 결과 기준에 미치지 못하면 1년 이내의 범위에서 해당 도매시장에 출하하는 것을 제한할 수 있게 하고 있다. 법률은 1년 출하금지로 하고 있는데 정작 지자체에서는 영업제한까지 내릴 수 있게 한 셈이다. 전형적인 과잉조치다.
이는 지자체의 대표 사례일 뿐이다. 한국법령정보원이 법제처의 의뢰를 받아 지난해 11월 제출한 ‘지방 규제개선을 위한 41개 지방자치단체 소관 규칙 정비과제 발굴 및 정비방안 마련 연구용역’을 보면 문제의 소지가 있는 사안이 무려 4,908건에 달했다. 이 중 상위법령 제·개정 사항 미반영은 587건이었고 상위법령 및 조례 위반도 343건이었다. 둘만 더해도 전체의 18.9%에 이른다.
조례로 정해야 할 사항을 규칙으로 정하는 경우도 있다. B지자체는 식품위생영업을 하는 이들의 시설자금융자를 위한 식품진흥기금 설치 기준을 규칙으로 정했다. 자치법규도 법과 시행령의 관계처럼 조례에서 정할 사항과 규칙으로 위임할 사항을 나눠야 하는데 식품기금은 보다 상위인 조례에서 정해야 한다는 게 법조계의 의견이다.
국민의 권리를 제한하는 사례도 있다. C지자체는 노인복지관을 설치·운영하면서 종사자의 정년을 시설장은 만 61세, 그 외는 만 57세로 정했다. 하지만 사회복지사업법 및 같은 법 시행령에는 이에 대한 내용이 없다. 지자체에서 이에 대한 규정을 만들려면 상위법에 근거가 있어야 하는데 그게 없는 것이다. 정년규제를 없애야 한다는 뜻이다. D지자체도 상황은 비슷하다. 이곳은 공공하수도의 사용료와 점용료·원인자부담금을 사용자가 내지 않으면 가산금을 포함한 독촉장을 발부하도록 돼 있다. 그러나 하수도법에는 사용료와 수수료 등의 연체 시 가산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하는 규정이 없다. 이 때문에 한국법령정보원은 해당 조항을 삭제하는 게 맞다고 권고했다. 관사를 정규직 공무원만 이용하게 하는 경우도 있었다.
상위법령 개정 사항이 바뀌지 않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재산매각을 위한 감정평가 시 감정평가법인에서만 할 수 있던 것을 감정평가업자도 가능하게 관련 법 시행령이 바뀌었지만 E지자체는 이를 반영하지 않았다.
정부 안팎에서는 지자체의 규칙이 사각지대에 있다고 입을 모은다. 주요 사례를 형태별로는 보면 △상위법령 제·개정 사항 미반영 △상위법령 및 조례의 위임범위 일탈, 불일치 법령상 근거 없이 규제사항을 규칙으로 신설 △조례로 정할 사항을 규칙으로 제정 △자치법규 입안기준 위반 △인용조문 오류 등이 대표적이다. 법제처의 연구용역을 수행한 법령정보원은 “자치법규도 법령과 마찬가지로 법의 일반원칙을 준수해야 하고 상위법령의 위임범위를 위반하지 않아야 하며 법령상 근거 없이 자치법규로서 국민의 권리·의무를 제한할 수는 없다”며 “그러나 현재 각 지방자치단체의 규칙은 법령 및 조례의 제·개정 사항의 반영이 잘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상위법령을 위반하거나 법령상 근거 없는 규제를 신설하는 등의 문제점이 발견된다”고 덧붙였다.
이 때문에 정부 안팎에서는 지속적인 관리와 모니터링을 강화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또 지자체에도 외부 전문가 조력을 확대하고 지자체의 조례·규칙 담당자에 대한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상위법령 제·개정 사항 미반영 유형은 행정법령이 충돌하고 기업과 국민들이 혼란을 겪을 수 있다는 점에서 개선이 시급하다”며 “지자체 공무원에 대한 교육 강화와 중앙정부와의 지속적인 소통 확대를 통해 문제를 줄여나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세종=김영필기자 susopa@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