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상무부가 자동차 수입이 자국의 안보에 위협이 된다고 결론을 내린 것으로 알려져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한국 수입차에도 고율 관세를 부과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최악의 경우 현대·기아차의 관세 부담액만도 3조5,000억원에 이를 수 있다.
AFP통신은 14일(현지시간) 상무부가 지난해 5월부터 무역확장법 232조를 바탕으로 수입차의 국가 안보 위협 여부를 검토한 결과 ‘위협이 있다’는 결론을 내리고 이런 결과를 담은 보고서를 17일까지 백악관에 보고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상무부 보고서를 근거로 90일 이내에 특정 국가의 수입차에 고율 관세를 부과하거나 수입량을 제한하는 등의 최종 조치를 취할 수 있다.
관건은 한국 자동차 업체나 부품 업체도 조치 대상에 포함될지 여부다. 트럼프 대통령은 수입차 관세 부과 대상으로 독일 등 유럽연합(EU)과 일본을 주로 거론해왔다. 하지만 한국산 자동차 수입만 예외로 적용하기는 쉽지 않아 보이는데다 최소한의 조치는 피할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예상이다. 최원목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미국이 첨단기술을 보호하려는 의도가 강해 전기차 등 미래형 자동차는 예외가 되기 어려울 것”이라며 “일반 자동차도 철강의 사례와 마찬가지로 일정 수준의 쿼터 조치를 부과받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 영국의 텔레그래프도 트럼프 대통령이 일부 첨단부품과 전기차에서부터 수입되는 모든 자동차에 이르기까지 여러 선택지를 두고 선호에 따라 관세 부과 방안을 고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현재로서는 미국이 한국에 어떤 조치를 취할지는 불투명하다. 칼자루는 트럼프 대통령이 쥐고 있다. 통상당국의 한 관계자는 “아직 미국의 공식적인 입장이 나온 것은 아니여서 트럼프 행정부가 어떤 입장을 내놓을지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자동차 업계는 미국이 25%의 관세를 투하할 경우 국내 완성차와 부품 업계가 초토화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가장 피해가 큰 곳은 국내 최대 자동차 수출 업체인 현대차와 기아차다. 금융투자 업계는 25%의 관세가 떨어지면 현대차의 관세 부담액이 1조4,000억원(약 22만대 기준), 기아차는 2조1,000억원(약 38만대)을 부담해야 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자동차산업협회 관계자는 “1%라도 받는다는 것 자체가 업계에는 충격이 될 수 있다”며 “관세와 관련해 자동차와 부품 업계, 협회, 산업통상자원부가 대응팀을 마련해 활동하고 있는 만큼 파장을 최소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내에서 수입차 가격에 직접 영향을 주는 고율 관세는 소비자들의 반발을 살 가능성이 높다는 점은 변수다. 또 무역전쟁이 전면전으로 확대될 우려도 커 트럼프 정부가 EU·일본 등과 양자 무역협정에서 협상의 지렛대로 활용할 뿐 실제 부과할 가능성은 낮다는 전망도 제기된다. 최근 미국을 방문해 트럼프 행정부의 핵심 인사를 만나고 돌아온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도 “최근 만난 미국 정부와 의회 인사들의 반응이 나쁘지 않았다”고 말했다.
최악의 경우 한국 정부가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할 수는 있지만 승소까지는 쉽지 않아 보인다. 최 교수는 “WTO 조항에는 국가 안보 조치에 대해 해당국의 재량권을 인정해주는 내용이 담겨 있어 승소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세종=강광우기자 뉴욕=손철특파원 구경우기자 pressk@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