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으로 관조하는 대상과 실제 삶으로 만나는 대상은 완전히 다르다. 가령 낚시 하면 달관한 인생이 연상된다. 하지만 직접 낚싯대를 던져보라. 주변을 맴도는 모기떼, 작열하는 태양, 예기치 않은 폭풍우, 잡히지 않는 물고기 등등. 생각과는 딴판의 세상이 펼쳐진다. 이 낚시꾼의 심정이 반도체 굴기를 선언한 중국과 비슷하지 않을까. 하지만 우리가 반도체 굴기를 바라보는 시선은 여전히 실제보다 이미지, 막연한 대중적 불안감에 기대고 있다.
우선 반도체 굴기의 탄생 배경을 알려면 반도체 패권의 역사부터 봐야 한다. 30여년 전만 해도 이 시장의 절대 강자는 미국이었다. 그러던 것이 1980년대 중반 기술을 축적한 일본이 엔저로 가격 경쟁력마저 확보하면서 1강 체제에 균열을 내기 시작했다. 당시 일본의 부상이 얼마나 위협적이었으면 일본의 반도체 수출이 ‘제2의 진주만 습격’에 비유됐다. 하지만 가만 있을 미국이 아니다. 일본 내 미국산 반도체 점유율을 기존의 두 배인 20%로 높이고 저가품 수출을 중단하는 내용을 담은 ‘미일 반도체 협정(1986년)’으로 반격을 가했다. 그 타격으로 일본이 흔들렸고 패권이 점차 한국으로 이동했다. 패권이 서쪽(美→日→韓)으로 움직인다는 ‘반도체 서진설’도 이런 맥락에서 나왔다.
특히 삼성전자·SK하이닉스는 지난 2008년 금융위기 즈음 펼쳐진 치킨게임에서 승리했다. 당시 유럽 최후의 메모리 업체인 독일의 키몬다(2009년), 일본 반도체의 자부심이었던 엘피다(2012년)가 도산했다. 그런데 반도체 굴기의 씨앗이 바로 이 엘피다의 파산으로 뿌려졌다. 현재 중국의 D램 사업을 이끌고 있는 이노트론이 엘피다 인력을 대거 수혈했기 때문이다. 이 무렵부터 중국 위협론이 나오더니 2014년 반도체 굴기, 2015년 중국 제조 2025가 선언되면서 절정을 이뤘다.
하지만 현실을 보자. 이노트론은 지난해 중순에야 19나노 D램 시제품을 내놓았다. 삼성이 3~4년 전 팔았던 것이다. 양산까지 끝내려면 갈 길이 구만리다. ‘중국의 메모리는 아직 실체가 없다’는 평가도 있다. 중국으로서는 선두 업체가 곳곳에 매설한 특허 지뢰, 막대한 투자비, 카피를 원초적으로 불가능하게 만드는 공정의 초미세화를 극복하기도 힘든데 메모리 약세장마저 겹쳤다. 미국도 중국 견제에 들어갔다. 그 결과 양안 합작의 결정체였던 푸젠진화는 D램 사업을 접었다는 소식마저 들린다.
반도체 굴기는 분명 경계해야 한다. 우리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체급, 정부의 산업 육성 의지는 언젠가 중국을 우리의 1순위 위협으로 올려놓을 것이다. 하지만 위기를 부풀리기 전에 실체부터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 순서다. 자만만큼이나 막연한 공포도 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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