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 일본 도쿄의 랜드마크인 도쿄타워를 끼고 돌자 일본 최대 수소전문기업 이와타니가 운영하는 시바코엔 수소충전소가 모습을 드러냈다. 사거리 교차로를 바라보고 위치한 이곳에는 두 대의 충전기와 파란 빛깔의 도요타 상용 수소전기차 ‘미라이(Mirai)’가 전시돼 있다. 하루에 보통 15~20대의 수소전기차가 이용한다는 시바코엔 수소충전소에는 때마침 기자가 방문한 오후4시부터 약 30분 동안 3대의 수소전기차가 충전을 마치고 나갔다. 두 명의 상주 직원이 한 대의 수소전기차를 충전하는 데 소요된 시간은 5분 내외. 충전 압력 규제 탓에 앞사람이 충전을 하고 떠나면 다시 압력이 차오를 때까지 30분을 대기해야 하는 한국과 대조되는 모습이었다. 시바코엔 충전소 인근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마쓰모토 미쓰코씨는 “충전소 설치에 앞서 정부가 상세한 설명으로 수소에 대한 오해를 풀어줘 안전한 에너지라고 생각한다”며 “집에도 가정용 수소연료전지인 에네팜을 설치했다”고 말했다.
일본은 1964년 도쿄올림픽 당시 신칸센을 선보이며 세계 최초로 고속철도 시대를 열었던 것처럼 2020년 도쿄올림픽에는 수소 시대를 열겠다는 포부로 수소 인프라와 수소전기차 보급에 전력을 다하고 있다. 일본 경제산업성이 2014년 ‘수소 사회’를 천명한 후 수소 수요 증진을 위해 우선 인프라 구축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것이다. 현재 일본에 설치된 수소충전소는 100개소가 넘는다. 수도이자 2020년 올림픽 개최지인 도쿄에만 14개소가 운영되고 있다. 일왕이 거주하는 궁내청이나 일본 공연의 성지 도쿄 부도칸에서도 5분 거리에 수소충전소가 설치돼 있다. 한 발 더 나아가 빠른 수요 창출을 위해 이동식 수소충전소도 설치했다. 충전소 위치에 사실상 제약이 없는 셈이다. 마포구와 서초구에 각각 1개소씩 설치된 서울과는 확연히 비교된다. 도쿄는 내년에 수소충전소를 35개소로 늘리고 오는 2030년에는 150개소까지 확충할 계획이다. 이케가미 사치 도쿄도청 환경국 수소에너지추진과장은 “도쿄도는 2030년까지 수소 사회 이행계획을 세우고 추진기금으로 400억엔을 조성했다”며 “수소전기차 보급과 수소연료전지 인프라 확충 등에 투입하고 있다”고 전했다.
일본이 수소 인프라 구축에 속도를 낼 수 있는 것은은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경제적 지원에 더해 낮은 규제 덕분이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지난해 초 3만여개의 주유소에 전기·수소충전소를 병행 설치할 수 있도록 시설 규제를 대폭 완화했다. 또 그동안 안전을 이유로 주유소에서 최소 10m 이상 떨어진 곳에 수소차 충전시설을 설치하도록 한 소방법 규정도 손봤다. 이날 기자가 찾은 시바코엔 수소충전소도 바로 옆에 주유소가 나란히 위치하고 있었다. 도로와의 거리도 매우 가까워 접근성이 높았다. 이케가미 과장은 “도로와 수소 충전시설 사이의 거리가 8m 이상 떨어져야 했는데 민간 사업자와 지자체의 요구로 지난해 벽을 하나 설치하는 대신 5m까지 허용하도록 규제를 낮췄다”고 말했다.
이를 통해 수소충전소가 도심 곳곳에 설치되자 일본 정부는 일반 대중교통 이용객들도 수소전기차를 이용할 수 있게 수소연료전지 전용버스를 시내버스 노선에 투입했다. 아직 고급차로 분류되는 수소전기차뿐 아니라 실생활에서도 수소 활용이 보편화하면 향후 수소 수요를 이끌어내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현재 수소 버스는 도쿄역에서 빅사이트가 위치한 오다이바까지 운행하는 노선에 5대 투입돼 있다. 약 80명의 승객을 태울 수 있는 크기로 오전과 오후에 각각 세 차례씩 운행한다. 스즈키 다케유키 도쿄도청 환경국 차세대에너지추진과장은 “올해 3월 말에 15대까지 늘릴 예정”이라며 “내년에는 100대를 확보할 것”이라고 밝혔다.
사무실이나 호텔 등 업무 및 산업용 연료전지로서 수소를 이용하기 위해 파이프라인 구축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트레일러로 수소를 공급하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에 수소 수요가 많을 것으로 예상되는 곳에 파이프라인을 건설하는 작업은 수소 사회 실현을 위해 매우 중요하다. 이가와 다케시 도쿄도청 도시정비국 공공재개발과장은 “자동차뿐 아니라 거리나 건물 안에서도 수소를 사용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며 “파이프라인을 설치해 블록별로 수소연료전지를 보급하는 것 등을 계획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이가와 과장은 파이프라인 구축이 제일 먼저 도입될 곳으로 이미 ‘작은 수소 사회’라고 불리는 도쿄 올림픽선수촌 지구를 언급했다.
도쿄 주오구에 위치한 올림픽선수촌은 건설 부지 면적이 도쿄돔의 3.7배인 18㏊에 달하는 대규모 주택단지로 올림픽이 끝나면 민간에 분양할 예정이다. 수소충전소를 비롯해 선수촌 내 단지와 각 주택에 수소를 공급하기 위한 파이프라인, 에네팜(가정용 연료전지) 등이 설치되는 이곳은 그야말로 수소 인프라의 집약체로 볼 수 있다. 이가와 과장은 “실용화 단계까지 가면 일본 최초의 수소 구역이 될 것”이라며 “지난해 10월부터 민간 분양에 대한 홍보를 시작했는데 반응이 꽤 좋아 수소 사회 실현을 위한 모범지구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낼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일본은 수소 인프라 구축을 위해 정부와 지자체·민간 협력이 유기적으로 이뤄져 있다. 도쿄도는 2017년 11월 민관을 대표하는 40여명으로 도쿄수소추진팀을 구축했다. 이 팀에는 현재 도쿄도 환경국과 도쿄상공회의소, 도요타, 에너지 기업인 JZTG 등 195개의 단체가 소속돼 있다. 이들은 정기적으로 회의를 열어 수소에너지 관련 사업의 상황과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 이케가미 과장은 “수소 관련 세미나를 열고 수소 사회 홍보활동을 하는 것은 물론 각 부문별 사업자가 모인 만큼 수소 인프라 구축에 유기적으로 협력해 속도를 내고 있다”고 말했다.
/박민주·김우보기자 parkmj@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