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한국 단색화에 中대륙도 반해버렸네

파워롱미술관 전시실 2개나 내줘

김환기 작품 등 단색화 79점 전시

도심과 1시간 거리에도 4만명 찾아

이우환作은 리움서 특별 대여까지

정치·선동 리얼리즘 중심이던 中

동양정신 깃든 韓추상미술에 매료

지난해 서울옥션 홍콩경매에서 약 85억원에 팔려 국내 미술경매 사상 최고가 기록을 세운 김환기의 붉은색 점화 ‘3-Ⅱ-72#220’(오른쪽)을 비롯해 각각 65억원, 63억원, 54억원에 거래된 경매 최고가 톱4 작품이 중국 상하이 파워롱미술관에 모두 모였다. /상하이=조상인기자지난해 서울옥션 홍콩경매에서 약 85억원에 팔려 국내 미술경매 사상 최고가 기록을 세운 김환기의 붉은색 점화 ‘3-Ⅱ-72#220’(오른쪽)을 비롯해 각각 65억원, 63억원, 54억원에 거래된 경매 최고가 톱4 작품이 중국 상하이 파워롱미술관에 모두 모였다. /상하이=조상인기자



“중국에서 이런 대규모 한국 현대미술을 보는 것은 불가능했는데 아주 놀랍습니다. 그간 잘 몰랐던 한국미술에 대해 새롭게 눈뜨게 됐습니다.”

중국 관객 종루이시(57·여)는 벽지 같은 추상화를 가능한 한 가까이 들여다보며 그 안에 담긴 화가의 행위를 읽어내려 애쓰고 있었다. 중국 상하이 파워롱미술관에서 지난해 11월8일 개막해 다음달 2일까지 열리는 ‘한국의 추상미술:김환기와 단색화’(이하 ‘단색화’) 전시이다.

27일 현재 이 전시의 누적 관객은 4만 명 이상. 80위안(약 1만4,000원)의 만만치 않은 관람료와 상하이 도심에서 1시간 거리 외곽이라는 미술관 입지의 약점까지 고려하면 상당한 쾌거다. 무엇보다도 공산화 이후 정치·선동적 리얼리즘 미술이 주류이던 중국이 추상미술에 관심 갖기 시작했다는 점은 미국과 더불어 세계 미술시장의 양대산맥을 이루는 중국이 ‘단색화 퀀텀점프’의 새로운 장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총 면적 2만3,000㎡로 중국 민영미술관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파워롱미술관은 ‘단색화’ 전시를 위해 전시실 2개를 통째 내줬고 김환기와 이우환, 단색화 대표작가 등 6명 작가의 대작들로만 총 79점을 엄선했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맨 먼저 박서보(88)의 작품들이 반긴다. 그린다기보다는 긋고 새기며, 그림이라기 보다는 ‘그리는 행위를 지워낸’ 결과임을 강조해 온 그의 작품을 1970년대 초기작부터 2000년대 근작까지 고루 만날 수 있다. 단색화 대표주자인 박서보는 이번 전시기간과 맞물려 세계적 화랑인 패로탱 갤러리 뉴욕과 화이트큐브 갤러리 홍콩 등지에서 동시다발로 개인전이 열려 더욱 주목받았다. 마대 캔버스 뒤에서 물감을 밀어내는 배압법(背壓法·화면 뒤에서 그려 물감을 밀어내는 기법)이 전통회화 기법이기도 해 친숙한 하종현(84)은 이번 전시를 위해 붉은색과 진남색의 신작을 제작했다. 흙빛의 대표작 외에도 철조망,못 등을 화면에 붙여 제작한 구작들도 만날 수 있다.

2815A37 단색화 대표작가 6인 낙찰총액


중국 상하이 파워롱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한국의 추상미술:김환기와 단색화’전시 중 이우환 회화 전시 전경. /상하이=조상인기자중국 상하이 파워롱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한국의 추상미술:김환기와 단색화’전시 중 이우환 회화 전시 전경. /상하이=조상인기자


중국 상하이 파워롱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한국의 추상미술:김환기와 단색화’전시에 선보인 이우환의 설치작품과 ‘대화’ 연작. /상하이=조상인기자중국 상하이 파워롱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한국의 추상미술:김환기와 단색화’전시에 선보인 이우환의 설치작품과 ‘대화’ 연작. /상하이=조상인기자


세계무대에서 가장 유명한 한국작가로 손꼽히는 이우환(83)은 국립현대미술관과 삼성미술관 리움의 소장품, 개인소장가 작품까지 대여해오는 등 각별한 노력을 기울여 최상급 작품만 선보였다. 1970년대 초부터 시작한 ‘점으로부터’ ‘선으로부터’ 연작을 비롯해 ‘바람’ ‘대화’ 시리즈 등을 총체적으로 보여주며 이번 참여작가들 ·중 유일하게 설치작품도 3점이나 내놓았다. 파라다이스그룹의 후원으로 프랑스 퐁피두메츠센터에서 개인전을 여는 이우환은 오는 2022년 프랑스 아를에 자신의 이름을 딴 미술관을 추가 개관할 예정이다.


한지에 먹을 스미게 해 칼집을 내거나 구멍을 뚫는 권영우(1926~2013), 전통 종이 재료인 닥을 주물러 ‘그리지 않은 그림’을 보여준 정창섭(1927~2011), 고령토를 바르고 그 위에 채색한 후 말려서 사각형으로 떼내기를 반복해 도자기의 빙열 같은 미감을 보여주는 정상화(87)의 작품들은 중성적 색채에 형상도 없으나 고요하고 깊은 명상으로 끌어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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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기(1913~1974)의 그림은 단 4점뿐이지만 단연 전시의 백미다. 지난해 서울옥션 홍콩경매에서 약 85억원에 팔려 국내 미술경매 사상 최고가 기록을 세운 붉은색 점화 ‘3-Ⅱ-72#220’을 비롯해 지난 2017년 4월 65억 5,000만원에 낙찰된 푸른색 전면점화 ‘고요 5-Ⅳ-73 #310’, 약 63억 3,000만원의 노란색 점화 ‘12-Ⅴ-70#172’와 ,54억원에 거래된 ‘무제 27-Ⅶ-72 #228’까지 경매 최고가 1위부터 4위까지가 한자리에 모이기는 처음이다.

‘단색화’는 1970년대 시작된 단색조의 회화 중에서도 특히 수행에 가까운 반복적 행위가 특징인 작품들을 가리킨다. 지난 2012년 국립현대미술관이 기획한 ‘한국의 단색화’ 전시 이후 단색화라는 명칭이 통용되기 시작했고 2014년을 기점으로 경매에서의 단색화 거래가 전체의 60%를 차지할 정도로 열풍이었다. 국제적 거래가 활발한 김환기와 이우환을 제외한 박서보·정상화·윤형근·하종현·권영우·정창섭 등 단색화 대표작가들의 경매 거래 총액은 2013년 8억원 수준에서 2015년에 최고 352억원까지 치솟았다.

일본의 ‘구타이’ ‘모노하’와 유사한 시대에 한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사조로 주목을 끈 ‘단색화’가 이번 중국 전시를 계기로 동아시아 전체의 맥락에서 그 위상을 제고하게 된 것이 뜻깊은 의미다. 쉬화린 파워롱미술관 관장은 “동양적 정서가 깃든 한국의 추상미술이 중국 관객들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져줬을 것”이라며 “단색화를 포함한 동양정신이 깃든 예술에 대한 연구를 동아시아의 미학적 가치 발굴과 연구의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상하이=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

조상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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