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정책·제도

역전세난에 속타는 세입자.. 허술한 '750조 전세금' 보호 장치

은행 전세금 반환대출 내놨지만

1주택자만 대출 가능 '유명무실'

전세보증보험 가입·분쟁조정도

집주인 동의 없인 사실상 불가능

소액 보증금부터 보호강화 필요




역전세난 심화로 전국적으로 임대차 분쟁이 확산 되는 가운데 약 750조 원으로 추산되는 전세보증금 보호에 대한 허술한 제도가 도마에 오르고 있다. 주택시장이 하강 곡선을 탈 때마다 세입자들이 전세금을 제때 반환받지 못해 주거 불안에 시달리거나, 깡통전세로 인해 거액의 금전적인 손해를 보는 경우가 반복되고 있다.

현재 전세금 보증 장치로 전세권 설정, 확정일자, 전세보증금반환 보증, 분쟁조정 등의 제도가 있지만 한계가 뚜렷하다. 전문가들은 지금이라도 촘촘한 제도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 유명무실화 된 전세금 반환 대출 = 금융권에 따르면 시중 은행들은 전세금을 반환해 줘야 하지만 전세가 하락으로 자금이 부족한 집주인들에게 신·구 전세계약서를 제출하면 그 차액 만큼 대출해주는 대출상품을 운용하고 있다. 은행에 따라서는 1억 원 이상도 대출이 가능하다. 그러나 이 상품은 1주택자만 해당 된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과거에는 집주인이 주택담보대출을 받아 전세금을 내준 후 새로운 세입자를 구하면 중도상환 수수료를 물고 주담대를 갚는 경우도 있었었다”며 “이제는 2주택자 이상 집주인은 대출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해 신용대출로 부족한 전세금을 메우는 집주인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과거 역전세난이 극심했던 2009년 도입된 ‘임대보증금반환자금보증’ 상품도 인기가 저조하다. 2009년 출시 첫해 1,020건 234억 원의 보증이 발급됐으나 지난해에는 43건 13억원에 불과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대출 가능금액이 최대 5,000만 원에 불과하고 실제로는 약 3,000만 원 밖에 되지 않아 실효성이 크지 않다”고 말했다.


◇ 집주인 동의 받아야 가능, 사각지대 많은 전세보험 = 전세보증금반환보증 상품의 문턱이 낮아지면서 이를 찾는 세입자가 늘었지만 전체 전월세 거래에 비하면 미미하다. 이 보증은 집주인이 전세금을 안 돌려 줄 때 보증기관이 대신 전세금을 먼저 내주는 일종의 ‘보험’으로 현재 SGI서울보증보험과 주택도시보증공사(HUG), 두 곳에서 발급한다. 지난해 두 기관의 보증 발급 건수는 11만 4,466건으로 전체 전·월세 거래량 183만 건 중 0.06%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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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는 보증료를 세입자가 전액 부담해야 하는데다 서민 세입자가 많은 다가구의 경우 사실상 집주인의 동의 없이는 가입이 불가능 하다는 점이 단점으로 지적된다. 보증료는 아파트의 경우 연 0.128%다. 전세금 3억 원 짜리 아파트의 2년간 보증료는 76만 8,000원이다. 그외 주택은 연 0.154%로 세입자 보호가 더 필요한 다가구·다세대의 보증료가 되레 비싸다. 이렇다 보니 아파트 세입자들의 가입 건수가 압도적으로 많다. 2018년 가입 건수가 아파트는 7만 9,426건인데 반해, 다가구(8,924건)·다세대(1만 5,990건)·연립(1,743건)은 이에 훨씬 못 미쳤다.

정부가 집주인 동의 없이 가입이 원칙적으로 가능하도록 지난해 제도를 수정했다. 그러나 다가구(단독) 주택의 경우 집주인의 임대보증금 확인서 없이는 가입이 불가능하다. HUG 관계자는 “여러 세입자가 있는 다가구 주택은 기존 임대보증금 규모를 집주인 외에는 정확히 알 방법이 없어 불가피하게 집주인 확인서를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진미윤 LH 토지주택연구원 연구위원은 “전세보증보험 활성화를 위해 보증 비용에 대해서 소득공제를 해주는 방식으로 세입자의 부담을 낮춰 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임대인 동의해야 분쟁조정 가능도 문제
= 소송이나 경매로 가기 전 분쟁조정 위원회를 찾는 세입자도 늘고 있지만 실효성을 제고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 주택임대차보호법상 분쟁조정제도는 임대인이 응하지 않으면 조정절차를 개시조차 못한다는 맹점이 있다. 김경천 서울시 주무관(변호사)은 “신해철 사건을 통해 의료 분쟁조정위원회는 병원의 동의 없이도 분쟁조정이 가능해졌다”며 “주택임대차 분쟁도 서민 보호 차원에서 일정 요건하에서 집주인 동의 없이 조정절차가 시작될 수 있도록 개선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전세제도로 인해 임대차 보증금 규모가 사적 계약에만 맡겨두기에는 막대하게 불어난 만큼 이에 맞게 보증금 보호 인프라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진유 경기대 교수는 “소액의 임대차 보증금 보호부터 강화할 수 있는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한편 김선동 자유한국당 의원이 SGI서울보증과 주택도시보증공사(HUG)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작년 집주인 대신 보증기관이 전세보증금을 세입자에게 돌려준 사례(보증반환사고)는 735건에 달했다. 2년 전(117건)의 6.3배 수준이다. 전국 226개 시군구 중에서는 보증반환사고가 가장 많이 난 곳은 고양시다. 모두 57건 발생했다. 그 뒤를 인천 서구(52건), 경기 용인시(39건), 인천 연수구(34건), 경남 거제시(28건) 등이 이었다.

이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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