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독립선언은 1919년 2월8일 일본에 유학 중인 조선인 학생들이 조국의 독립을 요구하며 일어난 사건이다. 일본경찰의 제지를 받으며 3·1운동의 기폭제가 됐다. 그로부터 정확히 100년이 흐른 올해 3·1운동 100주년을 앞두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는 손글씨로 선언서를 옮겨적는 릴레이가 한창이다. 관련 태그를 검색하면 1,800건이 넘는 손글씨가 나타난다. 2·8독립선언과 3·1독립운동 100주년을 맞아 과거를 현재로 옮기는 청년들만의 ‘역사 기억법’인 셈이다.
릴레이에 참여한 임채연(18)씨는 “청소년들이 주로 이용하는 미디어가 바뀌었고 SNS를 통해 정보들이 퍼지기 때문에 이런 방식의 캠페인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역사를 기억하게 되는 것 같다”며 “친구들 중에서도 세 명이 참여했는데 이를 계기로 역사에 더 많이 관심을 갖게 됐으며 또 역사를 기억하는 데도 효과적인 것 같다”고 말했다.
3·1독립운동 100주년을 맞아 다채로운 기념행사가 펼쳐지고 있는 가운데 청년들이 새로운 방식으로 기념하고 있어 주목을 끈다. 독립운동가들의 피겨를 제작해온 김은총(32) 위세임 대표도 그중 한 명이다. 자신을 ‘키덜트(Kidult)’라고 밝힌 그는 “오래전부터 레고나 피겨를 수집하는 사람들을 보며 자신이 좋아하는 콘텐츠를 통해 사회나 역사에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것도 가능하겠다고 생각했다”며 “멋지고 흥미로운 부분을 가미하면 더 많은 젊은이들이 역사를 기억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 대표는 독립운동가 피겨를 제작하면서 ‘한국판 마블 어벤저스’를 떠올렸다고 했다. 그는 “요즘 젊은이들이 마블의 세계관과 마블 영화에 등장하는 히어로들에 매료돼 있다”면서 “알고 보면 독립운동가들의 삶에도 극적인 배경과 스토리가 있다고 생각했고, 조금만 각색해서 캐릭터성을 부여하면 젊은 세대가 역사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질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SNS선 손글씨 선언서 릴레이 캠페인
그라피티 아트로 현대적 이미지 표현
기업도 ‘윤동주 에디션 볼펜’ 등 마케팅
지난 2017년 2월 그가 기획한 1호 피겨인 안중근 의사 좌상은 크라우드펀딩을 시작한 지 두 달 만에 2,600만여원을 끌어모았다. 지난해 10월 성수동에서 독립운동가를 주제로 진행한 ‘코리안레지스탕스’ 특별전시회에도 젊은 대학생들을 비롯해 500명 가까운 사람들이 다녀갔다.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열리고 있는 ‘1919 영웅, 2019 콘텐츠로 만나다’ 전시회에서도 게임·만화·패션과 역사의 ‘낯선 조합’들을 만날 수 있다. 김구 선생이 현대에 환생한 이야기를 줄거리로 한 웹툰이나 독립운동가들의 이미지를 활용한 후드티셔츠·휴대폰케이스 등이 전시돼 있고 전시장 곳곳에 기존의 엄숙하고 근엄한 표정을 벗어나 현대적인 이미지를 입은 독립운동가들의 모습들이 자리하고 있다.
전시회를 방문한 한동원(25)씨는 “역사를 다루는 전시들은 어쩔 수 없이 딱딱할 수밖에 없는데 젊은층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의류나 휴대폰케이스·게임 등 일상적인 소재들로 표현한 것이 흥미로웠다”고 말했다. 서수정(23)씨도 “사실 독립운동가하면 김구 선생이나 안중근 의사 등 대표적인 인물들만 알았는데 그라피티 아트처럼 생소하지만 멋진 예술 장르와 결합된 제품들을 보면서 몰랐던 인물과 역사에 대해 더 관심을 갖게 됐다”고 만족해했다.
지난 2013년부터 위인들을 그라피티 작품으로 담아내고 있는 레오다브(41) 작가는 젊은 세대의 이러한 취향에 대해 “김구 선생의 경우 남아 있는 사진들이 대체로 어두운 느낌이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밝은 느낌으로 표현하니까 보다 친숙하게 느끼는 것 같다”면서 “청년들이 역사에 관심을 가지도록 하려면 근엄하고 정형화된 틀에서 벗어나 자연스럽게 호응할 수 있는 다양한 방식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1월 윤동주 시인과 그의 시 ‘별 헤는 밤’이 때아닌 관심을 받은 바 있다. 한 볼펜 제조회사가 내놓은 ‘윤동주 에디션’이 젊은층으로부터 인기를 끌면서다. 청년들이 기념관과 역사책 외에도 전에 없던 다양한 통로를 통해 역사를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박남수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 상임대표는 “미래 역사를 꾸려나갈 주인공들은 결국 젊은 세대”라면서 “기성세대와 달리 직접 영상을 찍고 다큐멘터리를 만들면서 새로운 방식으로 역사를 기억하는 젊은이들이 많아지면 우리 사회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밝혔다. /최성욱·허진기자 hjim@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