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살이 좀 빠지셨나 봐요’ ‘처음 오신 이래 10년이 넘었는데 변함이 없으시다. 방부제를 드시나 보다’ ‘결혼한 후에 얼굴이 더 좋아지신 걸 보니 요즘 남편이 잘해주시나 보다’ ‘출산하고 정말 오랜만에 오셨는데도 여전히 아가씨 같다’ 등등. 오랜만에 내원한 고객들에게 진료실에서 내가 처음 건네는 말들은 주로 고객의 얼굴 변화에 관한 것이다. 그런데 거꾸로 ‘2년 만에 왔는데 원장님은 더 젊어지셨어요. 혼자만 좋은 걸 다 하시나 봐요’ ‘보톡스로 샤워를 하시나 보다’ ‘원장님 나이가 몇인데 배가 하나도 안 나왔어요’ ‘오늘은 좀 부어 보이고 피곤해 보이시는 게 어제 술 한잔하셨나 보다’ 등등 내 얼굴과 외모를 품평하는 고객도 많다. 처음에는 그냥 넘겼는데 여러 번 듣다 보면 신경이 쓰이는 것도 사실이다.
사실 고객들이 궁금해하는 것 중 하나는 소위 보톡스 전문가인 필자도 보톡스·필러 시술을 받는지, 그럼 누가 해주는지 등이다. 레이저 같은 새로운 시술을 도입하면 통증이나 부작용·불편감 등을 경험하기 위해 미리 시술을 받아본다. 그러나 30대 후반까지는 주름이 그다지 신경 쓰이지 않아서 필자가 처음 보톡스를 맞기 시작한 것은 40대 초반부터다. 40대 초반의 어느 날 아침, 전날 마신 술로 인한 숙취가 아직 안 풀린 상태에서 목욕탕 거울 앞에 선 내 모습을 보니 팔다리는 가늘어지고 배는 볼록 나온 ‘이티’를 닮은 몸매의 중년 남성이 서 있는 것이었다. 거기다 처지고 작아진 눈은 다크서클이 줄넘기를 하고 미간과 눈가에 자리 잡은 주름에 꺼지고 처져 울퉁불퉁해진 얼굴은 영락없는 ‘아재’였다. 아직 마음은 20대인데 이렇게 늙을 수는 없다는 생각에 그때 처음 보톡스와 필러를 맞아본 것이다. 보톡스와 필러를 처음 맞아보니 주름이 펴지면서 피부도 탱탱해지고 울퉁불퉁했던 얼굴이 부드러워진 것이 다시 30대로 돌아간 느낌이었다. 젊어진 느낌에 ‘아, 이래서 고객들이 시간과 돈을 들여 내게 보톡스를 맞으러 오나 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친김에 80㎏ 초반이던 체중을 8㎏ 감량하고 근력운동을 시작해 ‘식스팩’도 만들어 화보를 찍어봤다. 이렇게 필자가 외모에 신경을 쓰는 데는 선친의 유훈도 영향이 컸다. 선친은 개원 초기에 “넌 미용 시술을 주로 하는 의사니까 고객들이 보기에 의사의 얼굴이 좋아야 한다”는 말씀을 생전에 여러 번 하셨다. 그때는 외과의사였던 선친이 미용 쪽 시술을 받는 고객들에 대해 뭘 아실까 하는 의문점이 있었는데 돌이켜보면 혜안에 감탄할 뿐이다. 고객에게 안티에이징을 권하는 의사의 얼굴이 늙어 보이고 좋지 않으면 고객들이 속으로 ‘너나 잘하세요’ 할 것 아닌가.
지난달 13일 여성가족부에서 방송에 비슷한 얼굴의 아이돌이 나오는 것을 제한하라는 지침을 발표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여가부가 배포한 ‘성평등 방송 프로그램 제작 안내서’에서 ‘비슷한 외모의 출연자가 과도한 비율로 출연하지 않도록 한다’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음악방송 출연자들의 외모 획일성은 심각하다”며 “대부분의 출연자들이 아이돌그룹으로 이들은 마른 몸매, 하얀 피부, 비슷한 헤어스타일, 몸매가 드러나는 복장 등을 하고 있어 출연자의 외모가 다양하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그런데 우리나라 아이돌이야말로 방탄소년단(BTS)이 문화훈장을 받을 정도로 전 세계에 한류를 전파하는 문화 수출의 역군이고 우리나라의 경쟁력 있는 주력산업이지 않나. 게다가 우리나라 방송은 중국이나 동남아시아에서 짝퉁 프로그램을 만들 정도로 경쟁력이 있다. 아이돌에게 문제가 있고 방송 내용에 문제가 있으면 국민들이 알아서 판단할 일이지 정부가 나서서 방송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일은 국민들의 수준을 우습게 아는 전형적인 ‘관존민비’ 사고방식의 발로로 여겨진다. 급기야 더불어민주당의 모 의원은 소득주도 성장의 실패로 인한 일자리 감소와 친페미니즘 정책으로 현 정권에 대한 20대 남성들의 지지도가 떨어진 것을 지난 우파 정권 때 교육을 잘 못 받아서 그럴 뿐이라는 이상한 해석까지 했다. 국민들의 입장에서 여가부나 그 의원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아마도 ‘너나 잘하세요’일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