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로여는 수요일] 씨감자

- 길상호

숨소리가 끊기고


이불 밖으로 삐져나온 손가락마다

검푸른 싹이 돋아 있었다

장의사는 공평하게 당신을 쪼개서

가족들에게 하나씩 건네주었다

명치에 묻어둔 한 조각 당신이 꽃을 피워 올릴 때마다

꺾고 또 꺾고

당신의 무덤을 짓고 난 후로

두 눈은 소금으로 만든 알약,


사는 게 밋밋해질 때마다 깨뜨려 찍어먹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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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버섯이 번지던 한쪽 볼을,

파랗게 멍이 든 무릎을,

딱딱하게 굳어가던 뒤꿈치를,

오늘도 썩은 감자처럼 당신을 도려내다 보니

남은 새벽이 얼마 되지 않았다

1315A38 시로여는 수요일2



한 뼘 명치에서 싹을 잘도 키웠구나? 잘했다, 작은 것이 큰 것이다. 꽃을 꺾어 향기를 얻었구나? 잘했다, 삶을 견디는 건 누려야 하기 때문이다. 주릴 때마다 소금 찍어 먹었구나? 잘했다, 몸을 챙겨야 영혼이 달아나지 않는다. 검버섯 볼과 멍든 무릎과 굳은 뒤꿈치까지 알뜰히 챙겼구나? 잘했다. 모든 낡은 것은 새것으로 온단다. 남은 새벽이 얼마 되지 않았다니, 여러 조각이 되는 기쁨을 배우겠구나? 생명의 덩이줄기는 여럿으로 나뉘어도 모두 한 몸이라는 걸 마침내 알겠구나? <시인 반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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