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말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구속은 사법부 71년 역사상 가장 치욕의 날이었다. 인사권을 앞세워 제왕적 대법원장으로 불리던 양 전 대법원장은 사법행정권을 독점하고 외부로부터의 사법부 독립성을 훼손시켰다는 이유로 영어(囹圄)의 몸이 됐다. 후임 김명수 대법원장은 인사권을 내려놓고 외부 인사를 참여시키는 사법행정회의를 신설하겠다고 선언했다.
인사권자가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인사를 해야 한다고 강조된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대통령경호처가 지난해 직원인사에 대한 논란을 불식시키고 투명성을 높이고자 새로운 시스템을 도입한 것이 뒤늦게 회자되고 있다. 올해 승진자를 선발하기 위한 인사심사 과정에서 내부 직원으로 구성된 심사단을 꾸렸다. 심사단에게는 승진 후보자 명단을 공개하고 승진자로 적당한 대상을 선택하도록 했다. 밀실 인사라는 오해를 해소하고 공정성을 높여야 한다는 주영훈 경호처장의 의지가 반영됐다는 후문이다. 얼핏 보면 인사부서 독단이 아닌 내부직원의 공감대를 반영하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참신해 보인다. 경호처 창설이래 처음으로 도입한 인사 평가제도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경호처 직원들의 반응은 냉담한 분위기다. 정말 투명성을 높이려면 외부인사가 참여하는 심사단을 꾸렸어야 진정성과 실효성이 담보될 수 있었다는 불평들이 들려온다. 승진 후보자의 선후배로 구성된 심사단은 결국 윗사람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어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승진 후보자와 업무관계로 불편한 관계에 있던 사람이 심사단에 포함되면 후보자가 능력이나 실적과 상관없이 반대표가 쏟아질 가능성도 있다. 대통령과 그 가족을 위해 자신의 몸을 던져가며 묵묵히 희생했던 뛰어난 경호공무원의 평가가 허무하게도 인기투표로 결정되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연출되는 꼴이다.
공직사회는 인사를 단행하고 항상 뒷말이 무성하다. 100점짜리 인사는 없다는 말처럼 경호처의 경우도 그럴 수 있다. 다만 급격한 인사시스템 변화로 뒷말이 무성하다면 후폭풍에 대한 고민을 외면한 채 지나치게 외부 시선만 의식했다는 질타를 피해가기는 힘들 것이다. /hhlee@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