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해주 독립운동의 대부였던 최재형(1860~1920) 선생의 순국 100주년을 앞두고 추모 열기가 뜨겁다. 한민족 독립운동 역사에 찬란한 별이었지만 오랫동안 잊혀져 있던 진면목을 복원하려는 움직임이 종교계를 중심으로 일고 있는 것이다.
우선 다음달 4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연해주 독립운동의 대부 최재형 순국 100주년 추모위원회 출범식 및 강연회’가 개최된다. 이 행사는 한민족평화나눔재단(이사장 소강석), 독립운동가최재형기념사업회, 안민석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장이 공동 주최한다. 추모위원회에는 김형오 전 국회의장, 이종걸, 송영길, 이혜훈 의원 등 정치인을 비롯해 종교계, 학계, 체육계 등 각계 인사들이 두루 참가한다.
위원회는 이달말 개관 예정인 러시아 우수리스크 최재형 기념관에서 추모비와 흉상 제막식을 오는 8월12일 열기로 했다. 추모비는 2.6m 높이로 최재형의 행적과 ‘애국의 꽃, 연해주의 별’이란 문구가 한국어와 러시아어로 새겨진다. 내년에는 국제심포지엄, 추모음악회, 연구서적 출판기념회, 영화 및 다큐멘터리 제작 등 다양한 사업을 준비 중이다.
최재형은 함경도 경원에서 노비와 기생의 아들로 태어났다. 11살 때 배고픔에 못 이겨 연해주 집을 나와 포시에트 항구로 갔다가 쓰러졌다. 다행히 러시아인 부부가 구해서 양아들로 키웠다. 최재형은 선장인 양아버지를 따라 전세계를 일주하면서 세계화의 안목을 키웠다. 이후 군 납품과 건설 공사 등을 통해 연해주 최대 부호가 됐고 의지할 곳 없던 조선인들이 몰려들면서 ‘고려인의 페치카(난로)’로 불린다. 벌어들인 돈은 모두 독립운동과 32개에 이르는 교회와 학교를 짓는데 쏟아 부었다. 또 국내 진공작전을 조직한 동의회 총재, 한인 신문인 대동공보 사장, 독립운동단체인 권업회 초대 회장, 상해 임시정부 초대 재무총장(재무장관) 등을 역임했다.
특히 최재형은 안중근 의사의 이토 히로부미 저격 거사를 물밑에서 지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딸인 고(故) 최올가씨의 생존 시 증언에 따르면 안 의사가 거사를 앞두고 선생의 집에서 며칠간 머물며 사격연습을 했고 최재형이 일일이 조언을 해줬다고 한다. 하지만 최재형은 일본군이 한인 거주 지역을 습격해 집단 학살을 저지른 1920년 4월 참변 때 붙잡혀 사살됐다. 그의 일대기는 뮤지컬 ‘페치카’로 제작되기도 했다.
최재형이 뒤늦게 재조명된 데는 소강석 새에덴교회 담임목사의 공로가 크다. 소 목사는 “최재형은 거의 모든 연해주 독립운동과 관련 있는데도 자손들이 러시아에 살고 있는 바람에 국내에선 안중근 의사만 알려졌다”며 “앞으로 선생의 삶을 알리는데 적극 나서겠다”고 말했다./최형욱기자 choihuk@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