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1월 경북 포항에서 일어난 규모 5.4 지진이 인근 지역발전소 건설로 인한 것이라는 정부 조사연구단 발표가 나오면서 정부 등에 대한 피해 주민들의 집단 손해배상 소송 승소 가능성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배상액이 최대 9조원까지 추정되는 가운데 재판에서는 발전소와 지진과의 직접적인 인과관계, 정부와 운영사의 과실 문제 등을 피해자들이 얼마나 입증하느냐에 성패가 달렸다는 게 법조계의 공통된 분석이다. 상당수 법조인들은 정부 조사단이 사실상 ‘인재(人災)’로 결론을 낸 만큼 이번 지진 사고에 대한 배상 판결 가능성이 그 어떤 재난 때보다 높은 것으로 조심스럽게 진단했다.
21일 법조계에서는 지난 20일 “포항 지진은 지역발전소가 촉발했다”는 정부조사연구단 결론을 두고 포항 시민 등 피해자들이 소송에서 상당히 유리한 입장에 서게 됐다는 데 대체로 동의했다. 포항 시민들이 결성한 단체 ‘포항지진 범시민대책본부’ 회원 71명과 시민 1,100여 명은 지난해 10월과 올 초 이미 집단 손해배상을 청구한 상태다. 여기에 이번 조사 결과 발표로 소송 규모가 포항 시민 전체로 확대될 경우 배상 요구액이 5조~9조원에 달할 것이란 게 시민단체 측 주장이다.
서울 삼성동 A법무법인 변호사는 “민사 사선은 피고의 불법 행위를 원고가 입증해야 하는데 재해의 경우 정부나 기업의 과실을 증명하기가 쉽지 않다”며 “이번 조사단이 내놓은 결론은 기존 피해자들에게 유리한 결과로 작용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다수 법조인들은 로 판명된 포항 지진에 대해 줄소송이 이어질 경우 △발전소와 지진 사이의 실제 과학적 인과관계 △정부와 운영사 등의 주의 의무 위반 여부 등이 핵심 쟁점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조사단 결과가 인과관계 입증 자료로 인정받더라도 보상을 위해선 ’정부가 부작용 예방에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는 재판부의 판단까지 뒤따라야 한다는 지적이다.
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촉발 지진이라는 분석만으로 인과관계를 규명하긴 쉽지 않을 수도 있다”며 “인과 관계가 있었다 하더라도 정부의 고의나 과실, 위법 행위 등이 있어야만 배상이 성립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법조계에서는 법원이 국가와 지자체의 일부 배상 책임을 인정한 2011년 우면산 산사태, 2014년 세월호 침몰 사고 등의 경우에 비춰 이번 사고가 다른 재난보다 배상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이 많았다. 단순 자연 재해로 보기도 어려울뿐더러 정부의 책임도 피해자 대피 등 수동적 수준이 아니라 발전소 건립·운영 등 직접적으로 연관돼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자연재해의 경우 대체로 천재지변의 불가항력성을 인정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들의 면책을 인정하는 판결이 많았다. 일례로 2003년 태풍 ’매미‘, 2016년 태풍 ’치바‘로 정전 사태가 발생됐을 때도 법원은 한국전력의 배상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서울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발전소 운영업체 선정 때부터 주변 환경 등에 줄 영향을 철저히 살펴볼 의무가 정부에 있었기 때문에 세월호 참사보다 정부의 책임이 더 큰 사안”이라며 “해당 지역에 큰 지진이 자주 있었던 것도 아니고 피해 사실도 명확해 충분히 다퉈 볼만 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