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김은경 전 장관 구속영장 기각…靑 향하던 檢 수사 급제동

法, "증거인멸 및 도주 염려 소명 부족"

檢, 청와대 '윗선' 수사 계획 차질 불가피

검찰 "보강 수사 후 영장 청구 재검토"

법정 출석하는 전 환경부 장관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이 25일 구속 전 피의자 심문을 받기 위해 서울동부지법으로 들어가던 중 취재진의 마이크를 손으로 밀어내고 있다. /성형주기자법정 출석하는 전 환경부 장관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이 25일 구속 전 피의자 심문을 받기 위해 서울동부지법으로 들어가던 중 취재진의 마이크를 손으로 밀어내고 있다. /성형주기자



‘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을 받는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됐다. 현 정부 청와대 ‘윗선’까지 전선을 넓히려던 검찰의 수사에 제동이 걸렸다. 다만 검찰은 김 전 장관의 영장청구서에 신미숙 청와대 균형인사비서관의 공모사실을 적시한 만큼 추가 조사를 계속해 나갈 전망이다.

26일 오전 2시께 서울동부지법 박정길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직권남용과 업무방해 등 혐의를 받는 김 전 장관의 구속영장을 기각했다고 밝혔다. 법원은 “객관적인 물증이 다수 확보돼 있고 김 전 장관이 이미 퇴직함으로써 관련자들과는 접촉하기가 쉽지 않게 된 점에 비춰 볼 때 증거인멸이나 도주의 위험이 적다”고 기각 사유를 밝혔다.


법원은 이날 이례적으로 긴 기각 사유를 냈다. 우선 법원은 김 전 장관이 환경부 산하 기관 임원들에게 사직서를 청구하고 표적감사를 했다는 혐의에 대해 “다툼의 여지가 있어 피고인에게 방어권을 보장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구체적으로 국정농단 당시 대통령 탄핵으로 공공기관 인사 및 감찰권이 행사되지 못해 방만하게 운영된 점, 문재인 정부가 공공기관 정상화를 위해 인사수요파악 등을 목적으로 사직의사를 확인했다고 볼 수 있는 점, 해당 임원의 비위사실이 드러난 점 등 저간의 사정을 살폈다고 설명했다.

임원추천 관련 혐의에 대해서는 “김 전 장관에게 위법행위를 저질렀다는 인식이 다소 희박해 보인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대통령이나 관련 부처의 장을 보좌하기 위해 청와대와 관련 부처 공무원들이 임원추천위원회 단계에서 후보자를 협의하거나 내정하던 관행이 존재해왔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오전 2시33분께 서울 송파구 문정동 동부구치소를 나온 김 전 장관은 “앞으로 조사 열심히 받겠습니다”는 말만 남기고 자택으로 돌아갔다. 그는 ‘청와대에서 인사 관련 지시를 받은 적 없는지’, ‘재판부 결정이 타당했다고 보는지’ 등 취재진 질문에는 답하지 않았다. 김 전 장관은 전날 오전 10시15분께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를 앞두고 취재진에게 “최선을 다해 설명드리고 재판부 판단을 구하겠다”는 말만 남기고 재판정으로 직행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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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전 장관의 주요 혐의는 직권남용과 업무방해다. 직권남용은 블랙리스트를 작성해 전 정부에서 임명한 산하기관 임원들에게 강제로 사표를 받아냈다는 의혹이다. 업무방해는 사표를 받아내 공석이 된 자리에 현 정부가 추천한 인사에게 면접 관련 자료 등을 전달해 채용 특혜를 제공했다는 의혹이다. 이날 영장심사에서는 김 전 장관의 직권남용과 업무방해 혐의를 두고 검찰과 김 전 장관 측의 치열한 공방이 벌어졌다. 김 전 장관은 검찰의 비공개 소환 조사에서 관련 혐의를 부인했다. 검찰의 영장 청구가 기각되며 재판부는 “인사권은 장관의 재량 범위”라는 김 전 장관의 설명에 판정승을 준 것으로 보인다.

김 전 장관의 구속 영장은 기각됐지만 검찰이 직접 구속영장에 ‘청와대’와의 연관성을 밝혀 수사동력이 완전히 상실된 것은 아니라는 분석이 나온다. 25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동부지검 형사6부(주진우 부장검사)는 김 전 장관에 대해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하며 신 비서관의 공모사실을 적시했다. 신 비서관이 속한 청와대 인사수석실 산하 균형인사비서관실은 비경제부처 인사를 담당하는 부서다. 검찰은 해당 부서가 전 정권 인사를 쫓아내기 위해 ‘블랙리스트’를 작성하고 현 정부 청와대 입맛에 맞는 인사를 채용하는 데 관여했다고 보고 있다. 신 비서관은 검찰과 소환 조사 일정을 두고 조율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에는 조현옥 인사수석에 대한 조사도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은 김태우 전 검찰 수사관이 청와대 특별감찰반의 민간인 사찰 의혹을 제기하면서 불거졌다. 김 전 수사관은 지난해 11월14일 비위 의혹을 받고 청와대 특감반에서 검찰로 복귀 조치된 뒤 “청와대 윗선에서 민간인 사찰 지시가 있었다”며 청와대를 상대로 폭로전을 펴왔다. 자유한국당도 지난해 청와대 특감반의 민간인 불법사찰 의혹과 관련해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과 조국 민정수석, 박형철 반부패비서관, 이인걸 전 특감반장 등을 직무유기 또는 직권남용 혐의로 고발했다.

이 같은 폭로와 고발이 이어지자 검찰은 수사에 착수했다. 1월 청와대를 압수수색하며 본격적인 강제수사에 들어갔다. 검찰은 1월 환경부와 한국환경공단을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서 ‘장관 보고용 폴더’를 발견했다. 폴더에는 한국환경공단 임원들의 개인 비위, 업무추진비 사용 내역 등이 담긴 문건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환경공단 임원의 사퇴 여부를 다룬 문건도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법원이 김 전 장관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청와대는 문재인 정부 출신 장관의 첫 구속수사라는 불명예를 벗게 됐다. 그동안 청와대는 “김 전 장관이 일부 산하기관 감사를 벌이도록 한 것은 적법한 감독권 행사”라며 과거 정권의 블랙리스트 사건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주장해왔다. 검찰은 김 전 장관에 대한 보강수사를 통해 구속 영장을 다시 청구할지 검토할 계획이다.


서종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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