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 공공성 강화를 둘러싸고 정부와 대립각을 세웠던 한국유치원총연합회(한유총)에서 떨어져 나온 한국사립유치원협의회(한사협)가 한유총 출신 임원들을 대거 받아들이면서 정체성 논란에 빠졌다. 이들은 한유총 임원 재직 당시 횡령 혐의를 받았을 뿐 아니라 정부와 극한 대치를 주도했던 인물들이라 유아교육계에서는 ‘한사협이 한유총 적폐 모임이냐’는 비판까지 나온다.
27일 유아교육계에 따르면 한사협은 최근 김득수·최정혜·이경자 등 세 명의 한유총 전 이사장들에게 고문직을 제의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날 한사협 관계자는 “세 사람에게 고문직을 제안한 상태”라며 “김 전 이사장의 경우 지방까지 내려가서 만났다”고 설명했다.
한사협이 이들을 영입하려는 이유는 교육 당국과의 국가회계관리 시스템(에듀파인) 협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서다. 한사협 관계자는 “김 전 이사장의 경우 유치원 재정과 관련해 전문가라 정부와 에듀파인 협상을 앞두고 의견을 들을 필요가 있었다”고 밝혔다.
문제는 이들이 한유총 재임 당시 횡령 혐의는 물론 정부와 강경 대치로 물의를 빚었던 전력이 있다는 점이다. 서울시교육청은 올해 초 김 전 이사장과 최 전 이사장 등을 다른 임원들과 함께 한유총 지회육성비와 특별회비 등을 부정수렴한 혐의로 검찰에 수사 의뢰했다. 당시 교육청은 “해당 임원들이 지회육성비와 특별회비를 본인 계좌로 받는 방식으로 부정을 저질렀다”며 “공금 유용과 횡령·배임 혐의가 의심된다”고 설명했다.
이외에도 이들은 ‘개학 연기’ 사태를 주도한 이덕선 전 이사장과 마찬가지로 정부를 상대로 강성 투쟁을 벌여 논란을 일으킨 전력이 있다. 대표적으로 김 전 이사장은 2017년 재임 당시 정부의 국공립 유치원 확대 정책에 반대해 단체휴업을 시도했다. 이와 관련해 한사협 관계자는 “전직 한유총 이사장들이 비리 혐의를 받고 있지만 법적으로 충분히 소명할 수 있다고 보고 고문직을 제의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선 유치원 원장들은 한유총과 결별하고 온건주의를 표방해온 한사협의 정체성이 의심된다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한유총 소속의 한 유치원 원장은 “한유총 전직 임원들과 만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한사협에 대한 기대를 접었다”며 “한사협이 한유총 적폐 모임이냐는 비아냥까지 나오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유치원 원장은 “지금은 한유총 때문에 한사협이 반사이익을 얻고 있지만 나중에는 결국 강경파들이 득세할 것”이라며 “한사협에 가입할 생각이 전혀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