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개월 간의 뮬러 특검 수사 끝에 ‘정치적 면죄부’를 받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곧바로 오바마케어 폐지 같은 핵심정책을 밀어붙이며 2020년 재선 승리를 위해 속도를 내고 있다.
26일(현지시간) 오후 트럼프 대통령은 의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공화당은 곧 건강보험(을 대표하는) 정당으로 알려질 것”이라며 “지켜보라”라고 말했다. 그는 직전 트위터에 “공화당은 건강보험의 정당이 될 것!”이라고 썼다.
이같은 발언은 특검 결과로 정국 열세를 벗어난 트럼프 대통령이 다가올 2020년 대선에서도 핵심 이슈로 부상할 건강보험 문제를 선점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건강보험 문제는 모든 국민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어 선거 때마다 유권자들이 주목하는 사안인데다, 특히 오바마케어에 호감을 가진 유권자가 적지 않다는 사실은 트럼프 대통령이 오바마케어를 공략대상으로 삼는 이유이기도 하다. 또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오바마케어로 불리는 전국민건강보험법(ACA) 폐지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전날 법무부는 오바마케어가 전부 폐지돼야 한다는 의견서를 항소심 법원에 제출했다. 윌리엄 바 법무장관이 특검보고서를 검토한 뒤 러시아와의 공모는 없었고 사법방해 혐의에 대해서도 충분한 증거가 없다고 발표하고 난 뒤 하루 만에 오바마케어 폐지 의견서가 제출된 것이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대표적 치적으로 꼽히는 오바마케어의 폐지는 트럼프 대통령의 숙원사업이다. 미 텍사스주 포트워스 연방지방법원이 지난해 12월 오바마케어에 대해 위헌결정을 내린 뒤 항소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오바마케어 폐지 주장은 일부 폐지에 한정됐던 과거보다 더 확대된 것이라고 AP통신 등 외신은 지적했다. AP는 1심 재판 때만 해도 정부 쪽에선 질병을 갖고 있던 가입자에 대한 보험 적용 등 일부에 대해서만 문제를 제기했다고 설명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은 오바마케어를 눈엣가시처럼 여기고 여러 차례의 상원 표결로 폐기를 추진했으나 역풍을 우려한 당내 이탈표의 속출로 번번이 무산된 바 있다.
민주당도 트럼프 대통령이 건강보험 문제를 꺼내준 것은 차라리 잘됐다는 분위기다.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은 이날 “(여당은) 이렇게 얘기를 하고는 다르게 행동한다”며 “그들은 질병을 갖고 있는 가입자를 보호하겠다고 했다가 법원에 가서는 (오바마케어를) 다 없애버리자고 한다”며 대립각을 세웠다.
이 외에도 미 국방부는 같은 날인 25일 멕시코 접경지역인 유마-엘파소 구간에 길이 91.7㎞, 높이 5.4m로 장벽을 세우는 사업에 10억 달러의 예산전용을 승인했다. 이 역시 특검 결과 발표 하루 만에 예산전용 승인이 이뤄진 것이다.
이처럼 민주당의 반발이 불 보듯 뻔한 데도 국경장벽 예산전용을 곧바로 실행한 것은 특검 수사의 면죄부를 정국 주도권 장악의 계기로 삼는 한편, 자신의 핵심공약을 재차 부각시켜 재선가도에 활용하려는 의도가 다분해 보인다.
국경장벽 예산전용 문제는 한국과도 관련성이 높은 사안이다. 미 국방부가 최근 의회에 예산전용 검토대상으로 제출한 129억 달러 규모의 목록에는 성남 탱고 지휘소의 지휘통제 시설과 군산 공군기지 무인기 격납고 등 주한미군 시설 관련 예산도 포함돼 있다.